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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손견]]은 갓 태어난 손권의 풍모를 보고 고귀한 위치에 오를 상이라며 기뻐했다. [[초평]] 3년([[192년]]) 손견이 [[유표 (후한)|유표]]와의 [[전투]]에서 [[작전 중 사망|전사]]한 후 [[원술]] 밑에서 몸을 의지하고 있던 [[손책]]이 강동에서 궐기하자 손권은 형을 따라 각지를 전전하였다. 손권은 명랑하고 도량이 넓고, 생각이 깊으면서 동시에 결단력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손책은 책략을 세울 때 항상 손권과 상의하였고, 그의 의견을 높이 평가하여 손책 자신도 그에게 못 미친다고 말했다.
 
손권은 겨우 15살(196년)에 양선현의 수장이 되었고 그로부터 얼마 뒤 추천을 받아 봉의교위대행이라는 직무를 맡게 된다. [[199년]](건안 4년) 손권은 손책을 따라 여강태수 유훈을 쳐서 격파하고, 더욱 진군해 사이(沙羨)에서 [[황조]]를 격파했다. 그러나 [[200년]]에 손책은 [[허공 (후한)|허공]] 휘하의 자객에게 습격당해 26세로 단명하고 만다. 장사(長史) [[장소 (동오)|장소]]는 후계자로 손견의 3남 [[손익]]을 추천했지만<ref>《전략》(典略) ; [[배송지]] 주석, 《[[삼국지]]》51권 오서 제6 손익에서 인용</ref> 손책은 19세의 손권에게 후사를 부탁했다. 손권은 형의 죽음을 슬퍼해 울음을 그치지 않았는데, 장소는 그를 격려해 상복을 벗게 하고 말에 태워 진영을 시찰하도록 했다. 훗날 손권은 손견을 무열황제에 추증했지만 손책은 장사환왕으로 추증했다.<ref>만약 손책을 황제로 추증할 경우 손권은 군주가 아닌 섭정관이 되어버리게 되어 손책의 후손들에게 제위를 내줘야 한다. 손권은 자신이 군주로서 계속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손책에게 황제를 줄 수 없었던 것이다.</ref>
 
=== 집권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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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항]] 유절(幼節)
* [[장굉]] 자강(子綱)
* [[장소 (동오)|장소]] 자포(子布)
* [[장승 (동오)|장승]] 중사(仲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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