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요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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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임종하기 직전에 아래에서 올려다보고 있던 [[마리아 (예수의 어머니)|마리아]]와 요한을 보고 먼저 마리아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하고, 요한에게는 “이 분이 너의 어머니이시다”하고 말하며, 요한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부탁하였다. 이때부터 요한은 임종 때까지 평생 마리아를 곁에서 모시고 섬겼다(요한 19,26-27). 예수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한 후 [[마리아 막달레나]]로부터 예수의 무덤이 비어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사도들 중 가장 먼저 예수의 빈 무덤으로 달려갔으며, 뒤따라오는 베드로를 기다려서 그가 먼저 들어가게 했다. 그제야 요한을 비롯한 다른 제자들도 차례대로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다음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믿었으며(요한 20,1-5),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부활한 예수를 제일 먼저 알아보았다(요한 21,7).
 
성령 강림 이후 베드로와 함께 예루살렘(사도 3,1)과 사마리아([[사도행전|사도]] 8,14)에서 포교 활동을 벌였다. 그러한 요한을 [[바울로]]는 야고보, 베드로와 함께 ‘교회의 기둥’이라고 불렀다([[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갈라]] 2,9). 전승에 의하면 44년 헤로데스 아그리파 1세의 박해를 피해 [[소아시아]]로 피신했으며 그 곳의 일곱 교회, 즉 [[에페소스]], 스미르나, 베르가모, 티아디라, 사르디스, 필라델피아 및 라오디게이아 교회를 지도했다고 한다. [[95년]]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의 기독교 박해 때 요한은 군병들에게 붙잡혀 파트모스 섬으로 유배되었는데 그 곳에서 [[요한묵시록|요한계시록]]을 저술하다가, [[96년]] 도미티아누스가 암살되자 사면받아 에페소스로 귀환하여 [[요한 복음서]]와 요한 서신을 저술하였다. 그때 그는 너무 노쇠하여 제대로 설교를 할 수 없어 항상 신도들에게 부축을 받았다고 한다.{{출처|날짜=2014-03-14}} 요한은 항상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쳤는데, 매일 같은 말만 반복하는 것에 대해 신도들이 불평을 하자 요한은 “사랑은 그리스도 교회의 기초요, 사랑만 있으면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대답하였다. 그리하여 요한은 ‘사랑의 사도’라고 불리게 되었다.
 
서기 [[100년]]경에 94살의 나이에 사도들 중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고 편안하게 임종을 맞았다고 전해 내려온다.{{출처|날짜=2014-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