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조의 정변: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HotCat을 사용해서 분류:천추 태후 삭제함, 분류:천추태후 추가함
편집 요약 없음
1번째 줄:
'''강조의 정변'''(康兆의 政變)은 [[강조]]가 [[1009년]] [[고려 목종|목종]]을 폐위시킨 정변으로, [[요나라정변]]으로, [[제2차 [[고려-거란 전쟁]] 침입의 구실이원인이 되었다.
 
== 배경 ==
[[997년]] [[고려 목종]]이 18세에 즉위하였으므로 모후인 [[헌애왕후|천추태후]](千秋太后)가 [[섭정]]을 하게 되고, 귀양보냈던 천추태후의 정부(情夫) [[김치양]](金致陽)을 불러 들였다.<ref name="두산백과">[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57317&cid=40942&categoryId=31778 강조의 정변] 두산백과</ref> 김치양은 합문통사사인(閤門通事舍人)에 임명되고 뒤이어 우복야겸삼사사(右僕射兼三司事)에 임명되는 등 권세를 잡았다.<ref name="한국민족문화대백과">[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65612&cid=46621&categoryId=46621 강조의 정변]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f> 목종이 후사가 없이 병석에 눕게 되자, 김치양과 천추태후는 그들 사이에 낳은 아들을 목종의 후계자로 삼으려고 음모하였다.<ref name="두산백과"/> 이를 눈치 챈 목종은 중추원 부사(副使) [[채충순]](蔡忠順)에게 김치양의 음모를 말하고 [[고려 현종|대량원군 순]](詢)을 후계자로 삼아 사직을 타성(他姓)에 넘기지 않도록 부탁했다.<ref name="글로벌">[https://ko.wikisource.org/wiki/%EA%B8%80%EB%A1%9C%EB%B2%8C_%EC%84%B8%EA%B3%84_%EB%8C%80%EB%B0%B1%EA%B3%BC%EC%82%AC%EC%A0%84/%ED%95%9C%EA%B5%AD%EC%82%AC/%EC%A4%91%EC%84%B8%EC%82%AC%ED%9A%8C%EC%9D%98_%EB%B0%9C%EC%A0%84/%EA%B3%A0%EB%A0%A4%EC%9D%98_%EB%B0%9C%EC%A0%84%EA%B3%BC_%EC%A0%9C%EB%8F%84_%EC%A0%95%EB%B9%84/%EA%B3%A0%EB%A0%A4%EC%9D%98_%EB%8C%80%EC%99%B8%EC%A0%95%EC%B1%85#%EA%B0%95%EC%A1%B0%EC%9D%98_%EC%A0%95%EB%B3%80 한국사 > 중세사회의 발전 > 고려의 발전과 제도 정비 > 고려의 대외정책 > 강조의 정변]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ref>
당시 고려 조정에서는 외척 [[김치양]]이 [[헌애왕후|천추태후]](千秋太后)와 더불어 정권을 농단하고, 천추태후와의 사이에 낳은 아들을 목종의 후계자로 삼으려고 음모하였다. 목종은 후사 없이 병을 얻어 중추원 부사(副使) [[채충순]](蔡忠順)에게 김치양의 음모를 말하고 [[고려 현종|대량원군 순]](詢)을 후계자로 삼아 사직을 타성(他姓)에 넘기지 않도록 부탁했다.
 
== 경과 ==
한편 목종은 급변하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중추사 우상시 겸 [[평안도|서북면]] 도순검사인 [[강조]]에게 개경의 궁궐을 수비케 하였다. 이때 세간(世間)에서는 목종이 위독한 틈에 김치양 등이 나라를 빼앗으려 한다는 풍문이 돌았다.<ref name="글로벌"/>
 
이윽고 목종이 죽었다는 헛소문이 전해지자 강조는 별장(別將)을 시켜 대량원군 왕순(후일 [[고려 현종|현종]])을 맞게 하고,<ref name="글로벌"/> 자기는 5,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개경으로 달려가향했다.<ref name="두산백과"/> 강조는 평주(平州, [[평산]])에 이르러 왕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한때 주저하다가 목종이 살아 있는 한 천추태후와의 관계로 김치양 일파를 제거할 수 없다고 판단, 왕의 폐위를 결심하고 개경으로 들어 가<ref name="한국고중세사사전">[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18527&cid=42957&categoryId=42957 강조의 정변] 《한국고중세사사전》. 한국사사전편찬회. 가람기획</ref> 목종에게 퇴위를 강권하여 왕순을 왕으로 세웠다.<ref 이와name="글로벌"/> 동시에강조는 김치양 부자를 죽이고 태후와천추태후와 목종을 무리는귀양 귀양보내고보냈다. 강조는 목종을 살해하였다양국공(讓國公)이라 하고 사람을 보내어 지키게 하였다.<ref name="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결과 ==
이 정변으로 대량원군 왕순이 현종으로 즉위하였으며, 거란은[[거란]]은 이 사건을 트집잡아서 제2차 [[고려-요제2차 전쟁|고려-거란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목종과 천추태후는 귀법사(歸法寺)를 거쳐 충주(忠州)로 추방되었는데, 강조는 불안을 느껴 모자(母子)가 적성현(積城縣)에 이르렀을 때 사람을 보내어 목종을 살해했으며, 천추태후는 황주(黃州)로 도망가 거기에서 여생을 마쳤다.<ref name="한국민족문화대백과"/>
 
== 함께 보기 ==
19번째 줄:
== 참고 자료 ==
{{글로벌세계대백과}} <!-- 〈고려의 대외정책〉 -->
 
== 각주 ==
<references/>
 
[[분류:1009년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