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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전'''(尹烇, 1575(선조 8)∼1636∼1637(인조 1415). 조선 중기의 문신.
 
초명은 찬(燦).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회숙(晦叔), 호는 후촌(後村). 병사(兵使)선지(先智)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돈(暾)이고, 아버지는 증참판 창세(昌世)이며, 어머니는 청주 경씨(淸州慶氏)로 부제학(副提學) 혼(渾)의 딸이다. 황(煌)의 아우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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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대사헌 박동선(朴東善)과 함께 관가와 사대부가의 연료 독점에 대한 백성의 원성을 대변하였다. 이듬해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임금을 시종(侍從)하지 못했다는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으나, 호소사(號召使) 김장생(金長生)의 종사관으로 활약하였다. 강화로 들어가 분병조정랑·공조정랑·사예·예빈시정(禮賓寺正)을 역임하고, 익산군수를 지냈다.
 
1633년 종묘서령(宗廟署令)·직강·장령 등을 지내고, 1636년 병자호란12월병자호란 때 필선으로 빈궁(嬪宮)을 배종(陪從)해 강화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성이 함락되자성이듬해락되자 식음을 폐하고, 송시영(宋時榮)·이시직(李時稷) 등과 함께 자결하기로 결의, 두 번이나 목을 매었으나 구출되자 다시 패도(佩刀)로 자인(自刃)하려다가 미처 절명하기 전에 적병을 크게 꾸짖고 피살되었다.
 
사람됨이 돈후하고 신중하다는 평을 들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강화의 충렬사(忠烈祠), 연산의 구산서원(龜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헌(忠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