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작 뉴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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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임브리지 대학교 수학과 교수가 된 후, [[미적분학]]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이 새로운 수학의 발견에 대해서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와의 우선권 문제로 오랫동안 논쟁이 계속되기도 하였다. 그는 새 망원경을 만들어 왕립 학회에 제출함으로써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왕립 학회는 그것에 감명받아 1672년에 뉴턴을 회원으로 선출하였다. 1672년에 획기적인 발견을 했다. 캄캄한 방 안에서 가느다란 빛줄기가 프리즘을 통과하면 빨간색부터 보라색에 이르는 무지개 색과 똑같았다. 이렇게 갈라진 전체색의 빛을 렌즈에 통과시키면 다시 백색광으로 변했다. 뉴턴은 색은 빛의 기본 요소이며, 백색광은 스펙트럼상의 모든 색이 합쳐진 결과라고 결론 내렸다. 또, 스펙트럼상의 모든 색의 빛은 각각 굴절 정도가 다르며 고유하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1675년]] 박막의 간섭 현상인 뉴턴 환을 발견하였는데, 여기서도 그의 "빛의 입자설"과 [[네덜란드]]의 [[크리스티안 하위헌스]]가 발표한 "빛의 파동설"의 엇갈린 주장으로,
두 사람 사이에는 한동안 논쟁이 계속되었다.(단, 오히려 라이프니츠와 뉴턴이 서로의 수학적인 업적들을 인정하고 존경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어느 쪽이 사실인지는 아직도 확실하지 않다.)
 
[[파일:Newton's tree, Botanic Gardens, Cambridge.JPG|섬네일|케임브리지 대학교 [[식물원]]에 있는 "뉴턴의 [[사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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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은 [[1684년]] [[핼리 혜성]]을 발견한 것으로 유명한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와 행성 운동에 대해서 토론할 정도로 천문학에도 식견이 있었다.
 
1717년, 뉴턴은 에테르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실험을 고안했다. 밀봉된 두 유리 용기에 온도계를 넣었더니. 진공 속에 넣은 온도계가 다른 온도계만큼 빠른 속도로 온도가 올라갔다. 뉴턴은 이것을 공기보다 더 적게 존재하는 미묘한 에테르를 통해 열이 전달되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 정치 활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