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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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전: 인경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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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선정전|선정전]](宣政殿)은 임금의 일상적인 집무 공간으로 쓰인 곳으로,<ref name="ch76">최종덕, 76쪽.</ref> 인정전 바로 동쪽에서 인정전과 나란히 남향하고 있다.<ref name="yi66" /> 임금은 여기서 신하들과 나랏일을 의논하고 학문을 토론하며, 신하나 유생, 종친을 불러 시험을 치르기도 하였으며, 중국과 일본의 사신을 만나기도 하였다.<ref name="ch76"/> 또 왕비나 왕족들과 크고 작은 연회를 열기도 하였다. 선정전은 인조 반정 때 불에 탄 뒤 인경궁의[[인경궁]]의 편전인 광정전을 옮겨 지은 전각으로,<ref name="yi66"/> 지붕은 푸른색 유리 기와를 덮었는데, 궁궐에 유일하게 현존하는 청기와 지붕이다.<ref name="yi68">이상해, 68쪽.</ref>
 
인정전과 같이 의식을 위한 공간을 '정전'이라 하고, 선정전처럼 일상 업무를 위한 공간을 편전(便殿)이라 하였다.<ref name="ch77">최종덕, 77쪽.</ref> 정전인 인정전에 비하여 선정전은 건물이나 마당의 규모가 매우 작다. 다만 지붕을 청기와<ref group="주">당시 청기와는 대단히 비싼 건축 재료였다. 연산군은 재위 11년(1505년)에 사찰에도 청기와를 잇는 곳 많다면서 인정전과 선정전을 모두 청기와로 덮을 것을 지시하였으나, 이듬해 [[중종반정]]으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광해군 때도 [[영건도감]]에서 청기와를 굽는 데 필요한 물품 구입을 청하여 임금이 허락한 것을 두고 사관이 비판한 글이 실록이 실린 바 있다. 최종덕, 77쪽.</ref> 로 덮어 다른 건물과 구분했을 따름이다.<ref name="ch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