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식 (조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Luoshen (토론 | 기여)
Luoshen (토론 | 기여)
19번째 줄:
 
== 기타 ==
213년, 조식은 조조의 고향인 초현 주민들의 궁핍해진 생활과 황폐해진 고향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의 부(귀사부)를 지어 발표했다. 당시 조조는 초현을 대규모 군사기지화한 상태였기 때문에 조식이 묘사했던 것처럼 초현의 지역 사회는 황폐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조식이 이 귀사부를 발표한 것과 같은 해에 [[조비]]는 초현의 아름다운 경치를 찬미하는 임와부라는 부를 지어 발표했다는 것이다. 백성들이 궁핍한 삶을 살고 있는 상황에서 조식은 그들의 삶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조조를 비판하는 내용의 부를 적어 발표한 반면 조비는 조조의 기분을 상하지 않기 위해 그에게 아부하는 내용의 부를 적어 발표한 것이다. 인간성에 문제가 많았던 조비와 달리 조식은 백성들을 착취하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부터가 조비와는 극명히 달랐다는 점에서 이 점은이것이 재조명받고 있다.
 
당장 조조 사후 한 일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는데, 조비는 황제에 오른 후에 초 땅이 자신이 고향이라면서 백성들을 척박한 초 땅으로 강제로 이주시켜 둔전을 시행해 고향을 번영시키려고 했다. 그러자 [[노육]]은 그 곳에서의 백성들의 빈곤한 생활을 보고 표를 올려 그들을 비옥한 양 땅으로 옮길 것을 건의하는데, 조비는 그의 말에는 따랐으나 마음속으로는 노육을 원망한다. 그리고 그를 좌천시켜 이주한 백성들을 관리하게 하고 수양전농교위에 임명한다. 조조가 초현을 군사기지화한 것이 정말로 비판받아야 할 일인지에는 이견이 있으나 조조가 조비보다 조식을 총애한 것이 단순히 재능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전기 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