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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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문화재 정보
| 이름 =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br /br> (江陵 神福寺址 三層石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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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정_번호 = 87
| 번호 = 87
| 지정연월일지정 = [[1963년]] [[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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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주소 = [[강원도]]  [[강릉시]]  [[내곡동]] 403-22번지
| 소유자 = 국유
| 수량 시대 = 1기[[고려시대]]
| 연면적관리 = 강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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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_시기 = [[고려시대]]
| 수량 = 1기
| 비고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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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승자 =
| 지도 =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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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리표 = 강릉 신복사지
| 너비 =
| 대체지도 =
| 설명 =
| 위도도 = 37 | 위도분 = 44 | 위도초 = 33 | 남북 = N
| 경도도 = 128 | 경도분 = 53 | 경도초 = 7 | 동서 = E
| 웹사이트 =
| 문화재청 = 12,00870000,32
}}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江陵 神福寺址 三層石塔)은 [[강원도]] [[강릉시]] 내곡동 신복사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삼층석탑]]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87호로 지정되었다.
 
== 개요 ==
신복사의 옛 터에 남아있는 탑이다. 신복사는 통일신라 때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창건한 절로, 창건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즉 신라의 한 처녀가 우물에 비친 햇빛을 보고 그 물을 마셨는데 곧 아이를 배어 낳게 되었다. 집안 사람들이 아이를 내다버렸으나, 아이의 주위로 빛이 맴돌아 괴이하게 여겨 다시 데려와 길렀는데, 그 이름을 범(梵)이라 하였다. 범이 출가하여 승려가 된 후 고향에 돌아와 신복사와 굴산사(掘山寺)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창건 이후의 기록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탑은 2층의 기단(基壇)을 쌓고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것으로, 각 부분의 모습들이 특이하다. 바닥돌의 윗면에는 연꽃이 엎드려 있는 듯한 모양의 조각을 하여 둘렀고, 아래층 기단의 4면에는 안상(眼象)을 3개씩 새겨 넣었다. 탑신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새겨 얹어 놓았다. 탑신에는 부처의 사리나 불경 등을 모셔두는데, 1층의 몸돌에 이를 안치하는 방인 감실(龕室)모양의 조각이 있다. 1층의 몸돌에 비해 2·3층은 갑자기 그 크기가 줄어들어 매우 얇다. 지붕돌 역시 얇아서 귀퉁이끝은 치켜올림이 희미하며,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는 3단이다.
 
꼭대기에는 드물게 머리장식이 온전히 남아있는데, 각 부분의 높이에 비해 폭이 넓어 안정감을 준다.
 
탑의 앞쪽에는 한 쪽 무릎을 세우고, 두 손을 받치듯이 들고 있는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보물 제84호)이 있다. 이러한 모습은 같은 강원도 내의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국보 제48호)과 비슷하여 이 지방의 특색이 아닐까 짐작된다. 탑의 기단과 몸돌의 각 층 밑에는 널돌로 괴임을 넣었는데, 이러한 양식은 고려시대에 자주 보이는 모습 중 하나이다. 또한 아래층 기단에 안상이 새겨진 것이나,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가 3단으로 되어있는 점도 고려 전기의 석탑양식을 잘 따르고 있다.
 
== 같이 보기 ==
* [[삼층석탑강릉 신복사지]]
 
== 참고 자료 ==
* {{문화재청 문화재|12,00870000,32}}
 
{{토막글|한국 문화}}
 
[[분류:강원도 (남)의 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