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 브람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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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람스와 슈만 ===
요아힘은 [[로베르트 슈만]]에게 브람스에 대한 소개장을 보냈다. [[라인란트]]의 연주 여행을 끝내고 브람스는 기차를 타고 [[뒤셀도르프]]로 가 그곳 슈만 집안에서 환대를 받았다. 슈만은 이 20세 청년의 재능에 놀라 1853년 10월 28일 ''음악신보''(Neue Zeitschrift für Musik)에 ''새로운 길''(Neue Bahnen)이라는 제목의 기고를 올려, 대중에게 브람스를 "이 시대의 이상적인 표현을 가져다 줄 젊은이"로 소개하여 관심을 일으켰다.."<ref name =bahne>{{웹 인용
|url = http://w3.rz-berlin.mpg.de/cmp/brahms_bahnen.html
|제목 = Robert Schumann's Artikel Neue Bahnen
|확인일자 = 2007-10-30
|확인날짜 = 2008-04-09
|보존url = http://webarchive.loc.gov/all/20090614095721/http%3A//w3.rz%2Dberlin.mpg.de/cmp/brahms_bahnen.html
|보존날짜 = 2009-06-14
|깨진링크 = 예
}}</ref> 이 발표는 슈만의 지인 모임 바깥에서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이는 자신의 작품과 기술을 완벽하게 만들려던 브람스의 천성적인 자기 비판을 더욱 강화시켜주었을 것이다. 뒤셀도르프에 있는 동안 그는 슈만과 [[알베르트 디트리히]]와 함께 요아힘을 위한 소나타를 작곡하게 되는데 이것이 [[F-A-E 소나타]]이다. 그는 슈만의 아내인 작곡자 겸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과 가까워졌는데, 브람스는 14살 연상인 클라라에 평생동안 일종의 플라토닉한 연정을 품고 살았다. 브람스는 몇몇 여자들과 진한 정분이 있었고, 1859년에는 [[괴팅겐]]의 아가테 폰 지볼트와 약혼까지 이른 적도 있었으나 이내 파혼하여 평생 동안 결혼하지 않았다. 슈만이 자살을 시도하고 1854년 2월 [[본]] 근처의 정신 병원에 입원하면서 브람스는 클라라와 남편 슈만의 중개자가 되었으며, 슈만 집안을 돌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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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격 ==
 
베토벤처럼 브람스도 자연을 좋아하여, 자주 빈 근처의 숲에서 산책을 했다고 한다. 그는 주머니에 사탕을 넣어둬 아이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성인 브람스는 종종 무뚝뚝하거나 냉소적이었고, 때론 다른 사람들을 멀리하기도 했다. 그의 제자 [[구스타프 예너]]는 "브람스가 불평쟁이 평판을 듣는데는 이유가 있다. 또 그를 매력적으로 보는 사람도 거의 없다."<ref>[{{웹 인용 |url=http://web.archive.org/19990117004314/members.aol.com/abelard2/jenner.htm |제목=Brahms as Man, Teacher, and Artist<!-- Bot generated title -->] |확인날짜=1999년 01월 17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19990117004314/http://members.aol.com/abelard2/jenner.htm |보존날짜=1999년 01월 17일 |깨진링크=아니오 }}</ref> 그는 [[빈]]의 그가 좋아하는 "붉은 고슴도치" 술집에 날마다 드나드는 것처럼 빈의 언론이 보도한 예상할만한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그가 등짐을 지고 걷는 모습을 그가 붉은 고슴도치 술집으로 걸어가는 [[캐리커처]]로 묘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친구로 남은 사람들은 그에게 충실했으며, 브람스도 이들에게 성실하고 관대하게 대했다.
 
브람스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와 매우 다른 유형의 작곡가였지만, 그와 평생지기였다. 그는 1897년 죽음을 앞두고 빈의 [[빈 극장]]에서 초연하는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이성의 여신]](''Die Gottin der Vernunft'')에 가려고 하기도 했다. 아마 브람스가 슈트라우스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슈트라우스의 [[푸른 도나우]] 왈츠를 쓰는데 무언가 도움을 주겠다고 쓴 글일 것이다. 브람스가 슈트라우스와 안면을 트게 되었을 때, 슈트라우스의 아내 아델레(Adele)가 브람스에게 팬이라며 사인을 부탁하자, 브람스는 "푸른 도나우" 왈츠의 음표 몇 개를 쓰고는, "슬프게도 (이건) 브람스의 작품이 아니다!"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