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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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인 (토론 | 기여)
태그: m 모바일 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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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피소드 ==
=== 빼어난 유도실력 ===
그는 3형제중 막내로 태어났으나 어릴때부터 몸이 약해 어머니는 건강을 다지기위해 어린아들에게 유도를 배우게 했고 특히 본인이 불교신자임에도 일부러 아들이 유도를 계속할수있게 기독교계 학교인 계성학교에 진학시켰다고 한다. 당시 대구 계성학교는 모든 재학생에게 의무적으로 유도를 가르쳤다. 신도환은 졸업반 때 3단에 오르고, 졸업후 일본 메이지대 법과에 진학하여 유학을 떠났다. 이때까지막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열심히 공부해 법조인이 되는게 목표였고 유도는 순전히 취미로 배운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수업을 마치고 방과후에 강도관이라는 일본최대 도장에서 유도를 수련하였다. 그런데 이 강도관에서 신도환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어 일생을 유도인의 길을 걷게 되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일본의 최정상급 유도인을 가리는 대회인 천람시합(천황이 직접 관람하는 시합이란 뜻)에서 우승을 하게 되면 우승자는 천황의 면전에 나가 인사를 하게 되는데 이때 천황은 경의의 표시로 직접 일어나 고개숙여 답례를 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되었는데 신도환은 조선인으로서 천황의 고개숙인 인사를 받겠다는 일념하에 이때부터 공부는 젖혀둔채 유도에 올인하는 삶을 살게 된것이다. 그는 밤낮 자나깨나 수입시간과수업시간과 식사시간과식사시간, 수면시간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유도연습에만 몰두하였다.집에 가면 취침전까지는 그림을 그려가며 유도동작을 연구했다고 한다. 심지어 하루는 전차를 타고 귀가하던 중 전차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앞에 선 사람이 중심을 잃고 허둥대자 순간적으로 유도연습시간으로유도연습으로 착각하고 자기도 모르게 그 사람에게 발을 걸어 넘어뜨렸는데 이를 목격한 승객들이 항의하자 그는 손발이 닳도록 사과했다고 한다.하숙집에서 함께 방을 쓰던 룸메이트 또한 유도부원이었는데 어느날 밤 잠을 자다가 몽유병처럼 일어나 잠자던 무방비상태의 룸메이트를 창밖으로 집어던져 크게 다치게 하였는데 결국 주변사람들이 그를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켰으나 2주간의 검사끝에 정상으로 판정받고 퇴원할수 있었다고 한다.그후에도 이같은 불굴의 연습으로 마침내 강도관에서 5단을 취득하였다.그는 이때 집에서도 유도연습을 꾸준히 하여 집앞 벚꽃나무를 잡고 매일 천 번씩 업어치기 연습을 한 결과 그 다음해부터 그 나무에 벚꽃이 피지않았다고 한다. 그후 명치대를 졸업하고도 귀국하지도 취직하지도 않고 여전히 천람시합을 목표로 연습을 계속하였으나 그가 졸업한 1943년부터 태평양전쟁이 막판에 접어들면서 천람시합이 중단되는 바람에 아쉽게도 뜻을 접고 귀국하는 수밖에 없었다.귀국후자신을귀국 후 자신을 강제로 학병에 입대시키려는 형사들을 피해 만주 목단강시의 지인의 집으로 피신하였다가 해방후 돌아왔다. 해방후에는 모교인 대구 계성학교의 교사가 되었는데 전공인 사회과목과 훈육주임, 유도부 코치 등 3가지 일을 동시에 맡아 매우 바쁜 일상을 보냈는데 좌우대립의 와중에서 교내에서 좌우익 학생들의 충돌을 막기위해 학생들을 강력하게 지도하던 도중 어느날 학교 운동장에서 좌익학생들로부터 손도끼와 등산용 스틱으로 뒤통수를 강타당하고 권총 한 발을 등에 맞는 등 테러를 당해 절명직전까지 갔으나 인근의 동산병원에서 응급수술을 받고 4일만에 극적으로 의식을 회복했다고 한다.그 후 이 사실을 알게 된 신성모 국방장관이 위로차 그의 집을 찾아왔는데 신성모는 신도환의 둘째 외삼촌과 막역한 사이로 신도환의 모친을 "누님"이라 불렀다 한다. 신성모는 신도환을 보고 "네가 막내로구나"하고 친근감을 표시했고 이승만 대통령에게 데리고 가 소개시켰는데 평소 아들이 없어 허전함을 느꼈던 이승만은 신도환을 보자 "키도 크고 인물도 훤칠하고 유도도 잘한다면서?"하며 극진한 친밀감을 나타냈고 특히 공산당에게 테러를 당해 죽을 고비를 넘긴것을넘긴 것을 크게 안타까워했다고 한다.이때 이승만은 자신의 일을 좀 도우라면서 일본에 개인민사자격으로대통령의 개인밀사자격으로 건너가 재일조총련과 재일한국인들의 동정을 은밀히 살펴 자신에게 수시로 보고할 것을 지시하고는 자신에게 꽤 많은 여비를 지급하였다고 한다.정해진 임무를 다 마치자 이승만은 주일대표부의 예산으로 자신을 동경대법학부에동경대 법학부에 진학시켜 공부를 시켰는데 성적표가 나올때마다 학교에서 주일대표부로 성적표를 보내 마침 당시 주일대표부 수석대표였던 신성모로부터 "공부를 열심히 안한다"는 핀잔을 듣는것이 고역이었다고 한다.
 
== 신도환을 연기한 배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