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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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고구려 부흥 운동]] 세력을 후원하는 한편, 백제 땅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하였다. 신라는 [[675년]]에 당나라의 20만 대군을 [[매소성]]에서 격파하여 [[나당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였고, [[676년]] [[11월]]에 [[금강]] 하구의 [[기벌포]]에서 당나라의 수군을 섬멸하여 당나라의 세력을 몰아내었다. 이로써 신라는 한반도 남부 통합을 달성하고, [[대동강]]부터 [[원산|원산만]](元山灣)까지를 경계로 그 이남의 한반도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했다.
 
[[676년]] [[신라]]가신라가 한반도 남부에서 여러 국가를 통합한 것을 말한다.
 
[[신라]]는신라는 [[가야]], [[백제]], [[고구려]] 등 [[한반도]]에 있던 나라들을 차례로 멸망시켰고, [[676년]]에 [[당나라]] 군대를 [[대동강]] 북쪽으로 축출하여 한반도 남부를 통합하였다. [[나당 전쟁]]으로 외세를 축출하였으나, 한반도 북부 및 [[만주]] 일대로는 진출하지도 못하여 삼국의 통일을 달성하지는 못하였다. 그 또한 외세 개입시켜 이뤄낸 결과로 많은 부분에서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기가 어렵다.
 
신라가 차지하지 못한 [[만주]]의 고구려 옛 영토에는 [[발해]]([[698년]] ~ [[926년]])가 들어섰다. 신라와 발해가 공존한 시기를 [[남북국 시대]]라고 부른다. 이 때문에 [[한민족]] 최초의 통일 국가는 [[신라]]가신라가 아니라 [[고려]]이며, 신라의 '삼국통일'은 틀린 표현이며, 신라의 '삼국해체', '한반도 남부 통합' 또는 '원삼국 해체기' 등으로 고쳐 불러야 한다.
 
신라의 한반도 남부 통합은 [[고구려]]의 영토를 상당부분 상실했다는 점에서 영토적인 면에서 분명 한계이다. 또한 [[한반도]]내에서 민족국가의 정체성은 있었으며 이는 [[고려]]나, [[한반도]] 내에서 민족국가의 정체성은 [[고려]]로부터 출발하여 [[조선]]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생긴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