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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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잠자던 진실, 30년만에 깨어나다 “한국군은 베트남에서 무엇을 했는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비밀해제 보고서·사진 최초공개 |url = http://h21.hani.co.kr/section-021003000/2000/021003000200011150334040.html |출판사 = [[한겨레21]] |날짜 = 2000년 11월 15일}}</ref> 이 사건은 2000년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실위원회'가 진상조사를 벌이면서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게 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0037069 베트남전 양민학살 의혹 美보고서' 공개] 연합뉴스 2000년 11월 14일</ref>
 
퐁니·퐁넛 학살 사건은 전략촌 지역에서 일어난 양민 학살이었기 때문에 베트남 내에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고, 미군 역시 진상 조사와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였지만 한국군 측은 학살이 없었다고 부인하였다. 또한 정부와는 달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에 대하여 안타까움을 표하였고 이에 대하여 나중에도 문제가 몇번 더 대두되기도 하였다.<ref>[http://legacy.h21.hani.co.kr/h21/data/L000424/1p944o01.html 양민학살, 중앙정보부에서 조사했다], 《한겨레21》306호</ref>
 
=== 후에 학살 ===
[[후에 전투]] 도중 남베트남 해방전선측에 의해 자행된 학살 사건으로서 확인된 민간인 희생자 수만 4,062명에 달하는 베트남전 중의 전쟁 범죄 중 가장 규모가 큰 학살 사건이다.
 
흔히 자유진영의 전쟁 범죄만 주목받곤 하나, 후에 학살등 월맹측에서 일으킨 전쟁범죄들 역시 다수 있었으며, 전쟁 기간동안 월맹측에서는 이를 자유진영측의 전쟁범죄라 규정하는 프로파간다를 해왔다. 전후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정부는 이것들을 부정하거나 침묵으로 대응했으며, 학살등 전쟁범죄들에 대한 참전국들의 공동조사 요청에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이유로 꼽힌다.
 
== 전쟁의 여파와 후유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