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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다윈]]의 《[[종의 기원]]》은 모든 생물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그의 핵심 이론인 [[자연선택]]은 여전히 의심받았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도 [[장바티스트 라마르크|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이나 [[정향진화설]], 격변이론 이 널리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ref>Bowler P.J. 2003. Evolution: the history of an idea. pp236–256</ref> 다윈은 [[종분화]]의 원인에 대해 만족스러운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였고 이는 [[조지 로맨스|로맨스]]와 같은 학자들이 자연선택 개념을 부정하는 원인이 되었다.<ref>Gould, Stephen Jay (2002). The Structure of Evolutionary Theory.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ISBN|0-674-00613-5}}.</ref> 한편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월리스]]와 [[아우구스트 바이스만|바이스만]]은 다윈과는 별도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이론을 수립하였다.<ref>[http://www.springerlink.com/content/f6131358k265g3u4/ Kutschera U. 2003. A comparative analysis of the Darwin-Wallace papers and the development of the concept of natural selection]. Theory in Biosciences 122, 343-359</ref>
 
{{위키배움터|창조론자들#다윈 시대의 창조론|다윈 시대의 창조론}}
과학계 뿐만 아니라 종교계에서도 진화에 대한 많은 논쟁이 있었다.<ref>{{서적 인용|저자1=로널드 L. 넘버스 |제목=창조론자들 |날짜=2016 |출판사=새물결플러스 |isbn=9791186409558 | 장=1}}</ref>
 
20세기에는 진화의 과정이 관찰이 되었으며, [[게놈 프로젝트]]의 영향으로 모든 생물의 계통수를 그릴 수 있게 됨으로써, [[진화]]는 사실상 관찰되는 자연현상으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유전학]]과 함께 발달하기 시작했다. 20세기에는 집단유전학의 발달로 인해 진화 자체가 직접적으로 관찰이 되기 시작했으며, [[대장균의 장기간 진화 실험]]등, 실험을 통한 진화가 가능함이 밝혀지게 됨으로서 과학계에서 진화는 당연한 사실로서 자리하게 되었다.
 
{{위키배움터|창조론자들#근본주의 논쟁 속의 창조론|근본주의 논쟁 속의 창조론}}
한편 종교계에서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반진화론 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쳤다. 교육 기관에서 진화를 가르치는 것에 대한 반발이 있었고 특히 [[미국 남부]]에서 그런 활동이 많이 일어났다. 기독교 교파별로 진화에 반대하는 사람의 비율이 달랐고, 캠페인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개입하는지도 달랐다.<ref>{{서적 인용|저자1=로널드 L. 넘버스 |제목=창조론자들 |날짜=2016 |출판사=새물결플러스 |isbn=9791186409558 | 장=3}}</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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