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랑조제프마리위스 앵베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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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교 ===
그를 비롯하여 [[피에르 모방|모방]] 신부와 [[자크 샤스탕]] 신부 이렇게 세 명의 [[프랑스인]] [[선교사]]의 존재는 [[조선]]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박해를 피해 [[손경서 안드레아]]의 도움으로 [[경기도]] [[수원]]에 있는 그의 집에 숨어서도 [[천주교]]의 전도 활동과 교세 확장에 힘쓰던 앵베르 주교는 [[김여상]](김순성)의 배신으로 [[1839년]] [[8월 10일]]에 밀고를 당했다. 김여상은 관리들과 짜고 포도대를 꾸려놓고는 한 순진한 천주교인 농부를 현혹해서, "관리들이 천주교를 허락하여 고위 관리들까지도 입교할 것이라고것"이라고 거짓말을 하며, "프랑스인 선교사들이 [[한양]]으로 가서 그분들을 개종시켜야 한다고한다"라고 말했다. 그 농부는 교우들과 함께 포졸들 보다 먼저 앵베르 주교를 찾아가서 김여상에게 들은 이야기를 말했지만,말했다. 목회경험이 많은 앵베르 주교는 그것이손경서가 하는 말이 잘못된 정보인 줄을 알면서도 교우들의 교우들을안전을 위해 자수를 결심했다. 또한 그는 체포당해 죽임을 당하는 것이 시간 문제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미사]]를 올린 뒤 그를 기다리던 관리들에게 가서 자수했다. 그는 [[한양]]으로 보내져 해외 선교의 거처를 알기 위해 가혹한 [[고문]]을 당했다. 모든 해외 선교사들이 행방을 드러내면 [[개종]]한 신자들이 용서받을 것이라 생각한 그는 동료 [[천주교]] 신부인 [[피에르 모방]] 신부와 [[자크오노레 샤스탕]] 신부에게 조선 관가로 가서 자현할 것을 권고하는 서한을 보냈다.
 
{{인용문2|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좋은 목자는 자신의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