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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 ==
중국의 《통전》(通典)의 변방전(邊防典) 권196 북적(北狄)3에는 「이로써 스스로를 구두벌가한(丘豆伐可汗)이라 칭하니, 카간의 칭호는 여기서 비롯되었다.」(於是自號丘豆伐可汗, 可汗之號始於此)고 적어서 카간의 칭호가 채용된 것은 유연의 구두벌가한 때의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자치통감]]》(資治通鑑) 권77에 「카간 모(毛)에 이르러서 처음 강대해져서 통솔하는 나라가 36개였고 대성(大姓)은 아흔아홉 개라, 5세를 지나 카간 추인(推寅)에 이르러 남쪽으로 대택(大澤)으로 옮겼으며, 또한 7세 카간 (鄰)에 이르러 그 형제 7인과 족인(族人) 을전씨(乙旃氏)、차곤씨(車惃氏)를 시켜 부족의 무리를 10족으로 나누어 통솔했다.」(至可汗毛,始強大,統國三十六,大姓九十九. 後五世至可汗推寅,南遷大澤. 又七世至可汗鄰,使其兄弟七人及族人乙旃氏、車惃氏分統部眾為十族)고 했고, 《[[송서]]》(宋書) 열전제56 토욕혼(吐谷渾)조에는 「누(樓)는 기뻐서 절하고 처가한(處可寒)이라 불렀으니 오랑캐 말로 처가한(處可寒)은 송의 말로 '너의 관가(官家)'이다.」(樓喜拜曰處可寒, 虜言處可寒,宋言爾官家也)라 기술되어 있다.
 
또한 《[[진서]]》(晋書) 열전제67 사이전(四夷伝)에 「수락간(樹洛干)은 (중략) 무인 카간(戊寅可汗)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사강(沙漒)의 잡다한 족속으로 귀부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樹洛干(中略)號為戊寅可汗,沙漒雜種莫不歸附), 《북사》열전제84에는 「乃跪曰可汗,此非復人事」, 「伏連籌死,子夸呂立,始自號為可汗.」라고 하는 등 구두벌가한 이전에 가한이라는 칭호가 사용된 흔적이 기록에서 일부 확인된다. 이에 대해 일본 학자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는 후세에 추증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견해를 비치며 《통전》의 기술을 신뢰하였으나, 우치다 긴푸(内田吟風) 등 카간 칭호가 구두벌가한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보는 연구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