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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순 14연대 반란사건과 남로당 ===
{{본문|여순 14연대 반란사건}}
[[여순 14연대 반란사건]]<ref>'''여순반란사건''', '''여순봉기''', '''여순항쟁''', '''여순군란'''이라고도 한다. 과거에는 여순반란사건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았으나, 해당 지역 주민들이 반란의 주체라고 오인할 소지가 있다는 비판을 받아들여서 [[1995년]]부터 '''여수·순천 사건'''을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ref> 은 [[1948년]] 당시 [[대한민국 국군]] 14연대의 인사계 [[상사 (군인 계급)|상사]]였던 [[지창수]]가 14연대를 이끌고 봉기하여 [[여수시]]와 [[순천시 (전라남도)|순천시]] 일대를 장악했다가, [[지리산]]에 들어가 [[조선인민유격대|빨치산]] 활동으로 들어간 사건을 가리킨다. 이 사건의 주동자 지창수가 남로당원이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나, 이 사건이 남로당의 지령으로 계획적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여수는 수도 서울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지창수가 부대원들에게 [[조선인민군]]이 남하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으며, 반란이 일어난 후에 남로당의 승인이 떨어졌다는 등의 상황증거는 지창수가 우발적으로 일으킨 반란을 남로당 당중앙이 후에 어쩔 수 없이 승인했음을 보여준다.
 
이 사건의 주동자 지창수가 남로당원이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나, 이 사건이 남로당의 지령으로 계획적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여수는 수도 서울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지창수가 부대원들에게 [[조선인민군]]이 남하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으며, 반란이 일어난 후에 남로당의 승인이 떨어졌다는 등의 상황증거는 지창수가 우발적으로 일으킨 반란을 남로당 당중앙이 후에 어쩔 수 없이 승인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10월 27일]] 반란사건이 완전히 진압된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남로당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들어갔다.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의 공모자 색출이 시작,시작되어 수천여 명에 달하는 민간인들이 여순반란여순 반란 공모자로 몰려서 살해되었다. 이후 남로당은 사실상 소멸 상태에 이르렀다.
 
=== 이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