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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4·3 사건 ===
{{본문|제주 4·3 사건}}
[[1947년]] 제주도의 한 독립운동 기념식에서 어린아이를 말로 치고 간 경찰을 경찰서까지 쫓아간 도민들에게 경찰 측이 발포하여 12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관련자들이 연행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남로당 측을 중심으로 민관 총파업이 일어나자 경찰은 이를 무력 진압하고 다수의 경찰을 파면한 후 이 자리를 우익 단체인 [[서북청년단]] 출신자들로 메우기 시작했다.
[[1948년]] [[김달삼]] 등 남로당은 단독정부 수립운동 반대, 통일정부 결성, [[친일파]] 척결 등을 내세우며 제주도 내의 [[좌익]]세력을 결집하면서 좌우 충돌하였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민들이 희생되었다.
 
이에 따라 경찰 등 당국에 대한 불만이 커져가던 배경에서 [[1948년]] 남로당의 [[김달삼]] 등이 [[5.10 총선거]]와 남한 단독 정부수립 반대 등을 내세우며 경찰에 대해 무장봉기하여 상호 간의 교전이 발생했다. 이후 9연대 사단장 중령 [[김익렬]]은 [[김달삼]]과 회담을 가져 72시간 내에 전투를 중단하기로 합의하였으나, [[미군정]] 측과 [[조병옥]] 경무부장 등이 이에 강경론을 고집하자 큰 갈등이 빚어지면서 무산되었다. 동년 10월 정부 측이 파견한 군 병력이 대대적인 소탕 작전에 돌입하면서 최대 수만 명에 달하는 제주도민들이 살해당하고 중산간 마을의 95%가 방화되었다.
 
=== 여순 14연대 반란사건과 남로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