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진의 난: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Mintcherry (토론 | 기여)
잔글편집 요약 없음
9번째 줄:
이러한 배경 속에 축적된 불만이 폭발한 것은 [[523년]] 옥야진 백성의 거병이었다. [[파륙한발릉]](破六韓抜陵)이 수령(首領)인 반란병들은 수비대장을 살해하였고, 이들의 움직임에 홀려 기타 여러 진들에도 전염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반란자체는 [[530년]] 장군 [[이주영 (북위)|이주영]]이 진압했으나, 그 후 북위에 대한 [[양 (남조)]]나라 군대의 침공이 있었고, 또한 국내는 정권을 장악한 [[이주씨]] 일파의 전횡이 일어나 북위가 동서로 분열하여 멸망하는 원인이 되었다.
 
6진의 유력자 중에 6진의 난을 거쳐 북위의 멸망과정에서 권력중추에 올라선 자들도 있었다. 회삭진 출신으로 [[동위 (북조)|동위]]의 실권을 장악하여 [[북제]]의 기초를 닦았던 [[고환 (북제)]]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또한 무천진 출신의 유력자는 무천진 군벌, 일명 [[관롱집단]]으로 불리며 [[서위 (북조)|서위]]부터 [[북주]], [[수나라|수]], [[당나라]]까지 이르는 변천과정에서 각 왕조의 핵심적인 권력집단으로 군림하였다. 북주의 [[우문태]], 수나라의 [[양견]], 당나라의 [[이연]]등은 각 왕조의 창시자이며 무천진의 유력자 일족 출신이었다.
 
[[분류:남북조 시대의 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