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 (시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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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귀국하여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문학활동을 시작하였다. 해방후 원산의 작가동맹에서 펴낸 시집 《응향》에 자신의 시를 실었으나, [[1946년]] [[응향 사건]]이 발생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당국으로부터 반동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월남하였다. 이후 언론계에 투신하였고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종군기자단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제자들에게 사회에 올바름이 없더라도, [[기독교인]]은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칠만큼 올바름에 대한 올곧은 추구를 중요하게 생각한 구상 시인은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는 민주언론 운동을 하다가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지만 곧 무죄로 석방되었다.<ref>《[[청년아, 울더라도 뿌려야 한다]].》-울더라도 뿌려야/[[이재철]] 지음/[[홍성사]]</ref>
 
그 뒤로는 현실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언론과 문학활동에만 몰두하였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그의 반독재 경력을 높이 산 민주당 정권과 [[1961년]] [[5·16 군사 정변|5·16 군사정변]] 이후 종군기자 시절부터 친분을 쌓은 [[박정희]]가 정계입문을 권하기도 하였으나 거절하였다. [[미국]] [[하와이 대학교]]에서 한국문학을 강의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화가 [[이중섭]], 걸레스님 [[중광 (승려)|중광]], 장애인 화가 [[김기창 (화가)|김기창]], 시인 [[고은]] 등 다양한 방면의 예술가와 교류하였다. [[2004년]] [[5월 11일]]에 지병인 [[폐질환]]과 교통사고 후유증이 악화되어 향년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경기도 [[안성시]] 천주교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nowiki>[week&커버스토리] 추모여행, 세상에서 가장 경건한 ‘소풍’</nowiki>|url=http://life.joins.com/travel/news/article.asp?total_id=3634126|출판사=[[중앙일보사]]|저자=권혁재 기자|날짜=2009-06-04|확인일자=2009-06-17|확인날짜=2009-06-1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50715104330/http://life.joins.com/travel/news/article.asp?total_id=3634126|보존날짜=2015-07-15|깨진링크=예}}</ref>
 
그의 작품은 주로 가톨릭 신앙에 바탕한 것으로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프랑스 문인협회에서 선정한 세계 200대 시인에 들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