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캐슬어폰타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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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0년 영국 왕실은 [[타인사이드]]의 석탄을 뉴캐슬 [[키사이드]]로 운반하는데 규제를 가한다. 규제는 뉴캐슬 지역의 석탄 카르텔에게 사업을 독점할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었다. 이는 뉴캐슬이 주요 지역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1538년에는 '석탄 지고 뉴캐슬간다'라는 속담이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ref>{{서적 인용|url=https://www.worldcat.org/oclc/827951070|제목=The north : (and almost everything in it)|성=Paul,|이름=Morley,|위치=London|isbn=9780747578161}}</ref>
 
1630년대에는 전체 인구 20,000명 중 약 7,000명 가량이 [[흑사병]]으로 사망하였다.<ref>{{저널 인용|제목=Encyclopædia Britannica Eleventh Edition|url=https://en.wikipedia.org/w/index.php?title=Encyclop%C3%A6dia_Britannica_Eleventh_Edition&oldid=829702903|날짜=2018-03-10|언어=en}}</ref> 그렇게 도시의 방어력이 극도로 약화된 시기에, 마침 잉글랜드의 찰스1세가 펼친 종교정책에 반발한 스코틀랜드가 침공하여 뉴캐슬을 점령한다. (2차 주교전쟁) 그 평화협상 중에 스코틀랜드가 찰스1세를 제껴놓고 잉글랜드의 의회주의자들과 협상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세력을 잡게 된 것이 저 유명한 [[장기의회|장기의회(Long Parliament)]]이다.<ref>{{참고: 황희상, "특강 종교개혁사"(흑곰북스, 2016) p.147-149의 서술.}}</ref>
 
18세기 뉴캐슬은 런던, [[옥스퍼드]], [[케임브리지]]에 이어 영국에서 4번째로 큰 인쇄 산업 중심지였다.<ref>http://domain2160104.sites.fasthosts.com/documents/LivingNorth.pdf{{깨진 링크|url=http://domain2160104.sites.fasthosts.com/documents/LivingNorth.pdf }}</ref> 또한 고급 플린트 유리의 생산지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ref>{{웹 인용|url=http://www.oldandsold.com/articles02/glass-n.shtml|제목=Glass (N) - Encylopedia Of Antiques|확인날짜=2018-04-17}}</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