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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파일:CristobalColon.jpg|thumb|left|110px|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콜롬비아'''라는 이름은 [[아메리카]] 대륙의 항로를 처음으로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이탈리아어: ''Cristoforo Colombo'', 에스파냐어: ''Cristóbal Colón'')의 이름을 따서 [[프란시스코 데 미란다]]가 지은 것이다. 당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지배하던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들을 일컫는 말로 쓰이던 이 명칭은 나중에 [[1819년]] [[시몬 볼리바르]]에 의해 건국된 옛 [[누에바그라나다 부왕령]] 땅(현재의 콜롬비아, [[파나마]], [[베네수엘라]], [[에콰도르]])에 건국한 [[그란콜롬비아]]에서 채택되었다.<ref name="LABLAA5">{{웹 인용|저자=Carlos Restrepo Piedrahita|url=http://www.lablaa.org/blaavirtual/revistas/credencial/febrero1992/febrero2.htm|제목=EL NOMBRE "COLOMBIA", El único país que lleva el nombre del Descubrimiento|웹사이트=Revista Credencial|날짜=1992-02 |확인일자확인날짜=2009-12-11|언어=스페인어}}</ref>
 
[[1830년]]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가 떨어져나가고 [[쿤디나마르카]] 지역만 남으면서 새 나라를 [[누에바그라나다 공화국]]으로 지었다. [[1858년]] 신 그라나다가 공식 국호를 [[그라나다 연합]]으로 개칭했다가 [[1863년]] [[콜롬비아 합중국]]으로 바꿨고, 그 뒤 [[1886년]] [[콜롬비아 공화국]]으로 바꿔서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ref name="LABLAA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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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관계
콜롬비아는 남아메리카 국가 중 유일한 [[한국전쟁]] 참전국으로 당시 UN군으로 참전하여 1068명의 병력과 프리깃함 1척을 파견하였다. 콜롬비아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전쟁]] 개입은 외교정책의 이념적 요인보다는 국내의 안정이 주요 문제로 대두되는 상황 속에서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국내의 정치적 안정을 추구했던 것으로 분석된다.<ref>{{서적 인용 |저자=차경미 |제목=콜롬비아 그리고 한국전쟁 |꺾쇠표= 예 |연도= 2006 |출판사=한국학술정보(주) |위치=경기도 파주시 |id={{ISBN|89-534-5712-2}} |쪽= 책머리에 |인용문 = 콜롬비아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전 개입은 외교정책의 이념적 요인보다는 국내의 안정이 주요 문제로 대두되는 상황 속에서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국내의 정치적 안정을 추구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ref> [[대한민국]]과는 1962년 3월 수교하였으며 [[1971년]] 6월 보고타에 주 콜롬비아 상주공관을 설립하였다. [[서울]]에 주한 대사관이 개설되어 있다. 모두 885 명(재외국민 882 명, 시민권자 3 명)의 한민족들이 콜롬비아에 거주(2010년 12월 기준)하고 있다.<ref name="재외동포 현황">{{웹 인용|url=http://www.mofat.go.kr/webmodule/htsboard/template/read/korboardread.jsp?typeID=6&boardid=232&seqno=334627&c=&t=&pagenum=1&tableName=TYPE_DATABOARD&pc=&dc=&wc=&lu=&vu=&iu=&du= |제목=국가별 재외동포현황(2011).xls |출판사 =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 형식= 엑셀}}</ref> 중립외교를 추구하여 1988년에는 [[북한]]과도 수교하였다. [[1996년]] 10월 [[에르네스토 삼페르]] 대통령이 방한하였다. 같은 달 투자진흥협정을 체결하였다.<ref>{{웹 인용|url=http://interlatin.co.kr/co-relat.htm|제목=우리나라와의 관계 약사|출판사=중남미연구소 - 한국외국어대학교|날짜=2002|확인일자확인날짜=2007-5-24}}</ref> 1951년 11월 1일 콜롬비아 카르타헤나 항구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할 군인을 태운 구축함 Padilla호가 출발하였음을 기념하여 만든 ‘콜롬비아 한국전 참전기념비’가 2008년 11월 1일 준공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콜롬비아, 거북선 모형 한국전 참전기념비 준공식|url=http://www.newsis.com/gallery/view.htm?cID=1&pID=1&page=1&s_skin=&s_date=&e_date=&s_k=&pict_id=NISI20081102_0000218934 |출판사=뉴시스|저자=유동일 기자 |날짜=2008-11-02 |확인일자확인날짜=2009-06-21}}</ref>
[[파일:ARC Almirante Padilla.jpg|thumb|right|콜롬비아 해군. 알미란테 파디야급 프리깃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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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대의 유산인 콜롬비아는 여전히 유서깊은 [[로마 가톨릭]] 국가로 남아 있으며, 다문화 사회에 일체감을 주는 가톨릭 교회 전통이 폭넓게 유지되고 있다. 콜롬비아에는 연중 많은 기념일와 축제가 있는데, 대부분은 이러한 가톨릭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상당 부분은 다양한 다른 문화와 혼합되어 있다. 콜롬비아의 축제중 두드러진 몇 가지는 예는 '바랑키야 카니발'(Carnaval de Barranquilla), 흑인과 백인의 카니발(Carnaval de Negros y Blancos), [[메데인]]의 '꽃 축제'(Feria de las Flores), [[보고타]]의 '이베로아메리카 영화제'(Festival Iberoamericano de Teatro de Bogotá) 등이다.
 
여러가지 다양한 민족 전통의 혼합이 콜롬비아 음악과 무용에 반영되어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콜롬비아의 장르로는 쿰비아(cumbia)와 바예나토(vallenato)가 있다. 바예나토는 세계적인 대중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콜롬비아에서 문화적으로 일체감을 형성하는 강력한 매체는 텔레비전이다. 콜롬비아의 연속극(telenovela) 《베티 라 페아(Betty La Fea)》는 미국, 멕시코 등지에서 현지 버전으로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방송에서도 미국 버전의 "어글리 베티"가 방영되었다.<ref>{{뉴스 인용|url=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70203MW090208987170 |제목=KBS 2, 美 드라마 ‘어글리 베티’ 방송 |출판사=문화일보 |날짜=2007-02-03 | 확인일자확인날짜=2009-07-22}}</ref> 텔레비전은 또한 지방의 영화 산업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콜롬비아는 또 문예·학술이 성한 나라로 J. 이삭스, J. A. 실바, J. E. 리베라, G. 가르시아마르케스 등 라틴아메리카 문학사상에 남을 문학가를 배출하였다.<ref name="글로벌 콜롬비아"/>
 
여타의 라틴 아메리카인들과 마찬가지로 콜롬비아 사람들도 축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은 일체감과 국가적 자존심의 상징이다. 다만, 콜롬비아 프로 축구(Fútbol Profesional Colombiano) 클럽은 광폭한 충성심과 때로 폭력적인 경쟁의식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콜롬비아 축구는 프레디 린콘(Freddy Rincón), [[카를로스 발데라마]], [[이반 코르도바]], 파우스티노 아스피야(Faustino Asprilla) 같은 유명한 축구 선수들을 외국으로 "수출"하였다. 그 외에도 [[포뮬러 원]]의 후안 파블로 몬토야(Juan Pablo Montoya),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에드거 렌테리아(Edgar Rentería), 오를란도 카브레라(Orlando Cabrera), PGA 투어(PGA Tour)의 카밀로 비예가스(Camilo Villegas) 같은 유명한 스포츠 스타도 배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