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태그: m 모바일 웹
TedBot (토론 | 기여)
잔글 봇: 확인날짜 수정
48번째 줄:
 
자료에 남아있는 기록을 보면 국립대학으로는 [[서울대학교]]<ref>[http://archives.snu.ac.kr/main/cyber/histo/page5_1.html 서울대학교 관련 기록]</ref>, 여자대학으로는 [[이화여자대학교]], 사립대학으로는 [[숭실대학교]]<ref>[http://www.ssu.ac.kr/A_univ/d_history/index.jsp 숭실대학교 숭실史]</ref> 와 [[연세대학교]], 민립대학으로는
[[조선대학교]] 등이 [[대한민국]] 근대적 대학교의 시초이다. 한편 연혁을 높여 놓은 여러 대학들이 대학 형태가 아닌 성경학교나 강원 ([[강원도]]와는 별개), 강습소, 학당, 실업학교, 중등학교의 연혁까지 포함하여 집어넣고 있지만 거의가 [[1945년]]에 광복된 후 정상적인 학사운영이 이뤄졌다. 이같은 사실은 광복 후 당시 [[문교부]]에 등록된 한국 내 《대학설립인가의 현황<ref name="해방후 국내 대학설립인가 현황">{{뉴스 인용|url=http://www.unn.net/ColumnIssue/Univ50Detail.asp?idx=11&n4_page=1&n1_category=1|제목=미 군정기 대학 설립 봇물|성명=한국대학신문|날짜=2004-01-15|출판사=한국대학신문|언어=한국어|확인일자확인날짜=2009-02-25}}</ref>》에 기록되어 있다.
 
참고로 대학 50년사<ref name="daehak">{{뉴스 인용|url=http://www.unn.net/ColumnIssue/Univ50Detail.asp?idx=11&n4_page=1&n1_category=1|제목=미 군정기 대학 설립 봇물|성명=한국대학신문|날짜=2004-01-15|출판사=한국대학신문|언어=한국어|확인일자확인날짜=2010-03-01}}</ref> 를 보면 대학설립의 비사를 어느 정도 살펴볼 수 있는데 해방후 새롭게 정립한 '민족정기'로 [[1946년]] [[8월 22일]]을 [[서울대학교]]의 '개교일'로 잡아 지금까지 기념해 오고 있듯이 설립 인가서를 기준으로 2년제 [[전문대학]] 형식이던 [[이화여자대학교|이화여자전문대]]가 신청일자가 [[1946년]] [[6월 24일]]로 기록된 제1호 인가서를, [[연세대학교|연희전문대]]는 [[1946년]] [[7월 31일]]부로 기록된 제2호 인가서를 미군정청 학무국으로부터 받았고 [[고려대학교|보성전문대]]는 신청일자가 [[1946년]] [[8월 5일]]부로 기록된 제3호 인가서를 받아 [[8월 15일]], [[고려대학교]]라는 종합대학 승격의 법률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역시 [[전문대학]]의 형태로 운영되던 [[종로구]] [[혜화동]]의 [[동국대학교|혜화전문]](惠化專門)이 [[1946년]] [[9월 20일]], [[동국대학교|동국대]]로 설립인가를 받았고 [[종로구]] [[명륜동]]의 [[성균관대학교|명륜전문]](明倫專門)은 [[1946년]] [[9월 25일]], [[성균관대학교|성균관대]]로 설립인가를 받았는데, [[종로구]] [[낙원동 (서울)|낙원동]]의 [[단국대학교|단국대]]는 [[1947년]] [[11월 1일]]에 [[광복]] 최초 4년제 대학으로 정식 설립인가를 받았다. [[1948년]]에는 [[숙명여자대학교|숙명여대]], [[중앙대학교|중앙대]], [[한양대학교|한양대]], [[국민대학교|국민대]], [[1949년]]에는 [[건국대학교|건국대]], [[홍익대학교|홍익대]]가 설립인가를 받았으며 [[1949년]]에 가인가를 받았던 [[경희대학교|경희대]]는 [[1952년]]에 정식 설립인가를 받았고 일제때 [[평양]]에 있다가 폐교되었던 [[숭실대학교|숭실대]]는 [[1954년]] [[4월 15일]], 당시 [[문교부]]로부터 정식 설립인가를 받았다.
 
6.25전쟁 중이던 1952년에는 [[미국]] 하와이 교포 이주 50주년 기념사업으로 뒤떨어진 [[대한민국]]의 공업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당시 대통령이던 [[이승만]] 박사의 발의와 하와이 한인기독학원(Korea Christian Institute) 처분 대금과, 교포들 및 국내 유지의 성금, 국고 보조를 바탕으로 인천시로부터 교지를 기증받아, 1954년 4월 광복 후 최초의 국립 대학으로서 [[인하공과대학]]이 개교를 하였다.<ref>하와이 동포 성금으로 인하대 설립, http://www.dongpo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14169</ref> ([[한국대학신문]]의 [[광복]]이후 정규대학 설립인가 현황([[1946년]]~[[1954년]]) 참조)<ref name="daehak"/><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6/25/2011062500034.html|제목="1953년 戰禍 속 졸업생에게" 김창숙 선생 친필 훈사 발견|성명=곽래건 기자|날짜=2011-06-25|출판사=조선일보|언어=한국어|확인일자확인날짜=2011-06-25}}</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donga.com/3/all/20110625/38299890/1|제목=成大 창립자 김창숙 선생의 1953년 졸업훈사 공개|성명=손효주 기자|날짜=2011-06-25|출판사=동아일보|언어=한국어|확인일자확인날짜=2011-06-25}}</ref>
 
대학입학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광복]]후 [[1954년]] 한해만 실시한 [[연합고사|대학입학연합고사]]<ref>줄여서 [[연합고사]]</ref> 를 제외하고 대학 단독으로 출제한 입학고사(1945~1953, 1955~1961, 1964~1968)를 시작으로 [[입시제도|대학입학자격국가고사]](1962~1963)를 거쳐 [[1969년]]부터 실시하여 온 대학입학을 위한 [[예비고사|대학입학예비고사]](大學入學豫備考査)<ref>줄여서 [[예비고사]]</ref> 는 [[1981년]]까지 실시하였고 [[1982년]]부터‘[[학력고사|대학입학학력고사]]<ref>줄여서 [[학력고사]]</ref>’로 바뀌었다. 대학에서 결정하는 입학사정제를 포함한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수시(隨時)에서 원하는 자격대로 지원하여 합격여부로 대학입학을 결정하지만 [[1994년]]부터 실시되고 있는 [[대학수학능력시험]]<ref>줄여서 수능</ref> 에서 정시(定時)<ref>이 정시는 "가"군, "나"군, "다"군 3개 군으로 나뉜다. (과거에는 "라"군도 있었다.)</ref> 로 지원하는 것을 원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치러 수능점수에 따라 점수에 맞게 지원하여 합격여부로 대학입학을 결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