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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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l = http://people.aks.ac.kr/view.jsp?id=PPL_6JOb_A1540_1_0007770
|제목 =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 시스템
|확인일자확인날짜 = 2008-11-14
|저자 = 한국학중앙연구원
|날짜 = 200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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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報及元兇緘答則極爲兇譎, 口不可道. 欺罔之辭, 有難形狀. 天地間無有如此元之兇妄.<br />
조정에서 보낸 편지와 원흉이 보낸 답장이 지극히 흉악하고 거짓되어 입으로는 말할 수 없었다.<br />
기만하는 말들이 무엇으로도 형상하기 어려우니 하늘과 땅 사이에는 이 원균처럼 흉패하고 망령된 이가 없을 것이다.<br />|《[[난중일기]]》 [[을미년]] ([[1595년]]) [[11월 1일]]<ref name="be01">{{뉴스 인용|제목=이순신, 원균을 ‘흉악한 도적’에 비유 |url=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79536.html|출판사=[[한겨레]]|저자=구본준|날짜=2008-04-02|확인일자확인날짜=2008-04-02}}</ref>}}
 
난중일기 전체에 원균에 대한 비판이 많은데 특히 휴전 기간과 백의종군 후 권율 휘하에 들어갔을 때에 집중돼 있다. 위의 인용은 [[2008년]] 충무공유사를 해석하던 중 발견한 내용이다.<ref name="be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