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 (조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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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세자 시절 및 즉위 ===
문종은 [[조선 세종|세종]]의 맏아들이자 소헌왕후의 소생 중 첫째로장자로 출생하여 [[1421년]] 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왕세자로 책봉된 다음해인 [[1422년]]에 조부인 [[조선 태종|태종]]이 세상을 떠난다. 젊은 나이에 일찍 혼인하였으나 첫 번째 부인이었던 휘빈 김씨는 문종의 사랑을 얻으려 온갖 잡술을 이용하다가 발각되어 폐위되었고, 두 번째 아내였던 순빈 봉씨는 폭력적이고 [[동성애|동성애적]]인 기질로 나인 소쌍과 동침하여 자질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으로 인해 폐위되었다. 그리고 이미 후궁으로 들어와 있던 권씨와 혼인하였다. 그러나 권씨(현덕왕후)는 왕세자빈 시절이었던 [[1441년]] [[조선 단종|단종]]을 낳은 지 하루 만에 산고로 인하여 죽고 말았다.<ref>[http://sillok.history.go.kr/url.jsp?id=kda_12307023_001] 세종 23년(1441) 7월 23일 1번째기사. 왕세자빈 권씨가 원손을 낳아 대사면령을 내리다. ,[http://sillok.history.go.kr/url.jsp?id=kda_12307024_001] 세종 23년(1441) 7월 24일 1번째기사. 왕세자빈 권씨가 졸하여 조례(弔禮)를 행하다 </ref>
 
문종은 세자시절 세자사(世子師) [[하연]]을 스승으로 학문을 닦았으며, 어렸을 때부터 인품이 관대하고 후하여 누구에게나 좋은 소리를 들었으며 학문을 무척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의 정량적 강우량 측정기인 측우기를 발명<ref>[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Tree=0&id=kda], 세종실록 세종23년(1441년) 4월을미(양력 5월19일), '근년 이래로 세자가 가뭄을 근심하여, 비가 올 때마다 젖어 들어 간 푼수[分數]를 땅을 파고 보았었다. 그러나 적확하게 비가 온 푼수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구리를 부어 그릇을 만들고는 궁중(宮中)에 두어 빗물이 그릇에 괴인 푼수를 실험하였는데'라는 측우기에 관한 첫 기술이 나옴.</ref>할 정도로 천문학과 산술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702080020920101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7-02-08&officeId=00020&pageNo=1&printNo=10537&publishType=00020], [[동아일보]] 1957년 2월 8일, 정부가 [[1957년]] 2월 제19차 국무회의에서 5월19일을 발명의날로 정한 것은 문종이 측우기를 발명했다는 기술이 음력 4월29일(양력 5월19일)에 처음으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유래함</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