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원군: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4번째 줄:
 
== 생애 ==
=== 생애 초반 ===
아버지는 보성군 합이고, 어머니는 청풍군부인 [[합천 이씨]](淸風郡夫人 陜川李氏)로 [[광록시]]소경(光祿寺少卿)을 지낸 이무창(李茂昌)의 딸이다.
 
줄 10 ⟶ 11:
[[1457년]](세조 3) 보신부정(保信副正)이 되고, [[1460년]](세조 6) [[10월]] [[세조]]가 [[정의왕후]] 등과 함께 황해도(黃海道), 평안도(平安道)를 순행(巡幸)할 때 세자 장이 어가를 호위하고 [[임영대군]] 이구(臨瀛大君 李璆), [[영응대군]] 이염(永膺大君 李琰), [[계양군]] 이증(桂陽君李璔), 익현군(翼峴君) 이관(李璭)·순성군 이개(順城君) 李𧪚)·보성경 이합(寶城卿 李㝓)·영순군 이부(永順君 李溥), 귀성군 이준(龜城君 李逡) 등과 함께 호종(扈從)하였다. [[1460년]](세조 6) 세조가 친히 주관한 경서(經書) 시험에 합격하여 창선 대부(彰善大夫)를 가자되었다. 이어 [[세조]]가 종친 중에 학식과 무예가 출중한 사람을 뽑아 진종(陳宗)과 사종(射宗)을 삼을 때 입선하였다. 그는 늘 무예를 연마하여 능력을 인정받아, 세조가 군사를 사열할 때는 [[구성군]] 준과 함께 대장으로 임명되었다.
 
=== 변방 방어, 이시애의 난 격퇴 ===
이듬해[[1461년]] 율원부령(栗元副令)이 되고 [[1461년]] 세조의 어가가 녹양평에 거둥하여 사냥할 때 양녕대군, 임영대군, 영응대군 등과 함께 어가를 호위하였다. [[1462년]](세조 8) 율원령이 되고, 이 해 [[10월]] 세조가 강무(講武)를 할 때 사자위장(獅子衛將)에 임명되었다. [[1463년]](세조 9) 율원부정(栗元副正)이 되었다가 그해 [[8월 3일]] [[세조]]가 이 서교(西郊)에 거둥하여 사냥할 때 세조를 호위하였고, 바로 공현위장(控弦衛將)에 임명되었다.
 
[[여진족]]이 [[평안도]](平安道) 지역에 자주 침범하여 백성들의 인명을 살상하고 재산을 약탈하자, 그해 세조가 [[평안도]]는 경계가 야인(野人)과 인접해있는데다가 방산진(方山鎭)은 곧 그 요충지(要衝地)라서 특별히 그를 명선 대부(明善大夫)를 가자(加資)해주고 가서 지키게 하였다. 그해 [[10월 22일]] 세조의 왕명으로 민발(閔發), 박수장(朴壽長) 등과 함께 [[평안도]](平安道)에 가서 오랑캐를 정벌하는 [[한명회]]를 지원하고, [[한명회]]의 휘하로 출정하라는 명을 받고 [[10월 25일]] 행 첨지중추원사(行僉知中樞院事) 민발, 행 호군(行護軍) 조계종(趙繼宗), 행 대호군(行大護軍) 박수장 등과 함께 군관(軍官) 1, 2인을 거느리고 [[평안도]]로 가 [[여진족]]과 교전하였다. 이후 그는 방산진을 지키면서 야인의 침입을 근절시키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줄 16 ⟶ 18:
[[1466년]](세조 12) 율원도정(栗元都正), [[1467년]](세조 13) 율원정으로 강작되었다가 이 해 [[5월]] 장용대장(壯勇隊將) 대호군에 임명되고, [[이시애의 난]]이 발생하자 [[7월 2일]] 그는 경회루 아래에 모든 재상과 승지들을 불러 병사(兵事)를 의논하는 자리에 소환, 바로 율원도정으로 총통도장(銃筒都將)에 겸임되었다. 같은 날 세조의 명으로 귀성군 이준, [[강순]] 등과 함께 [[이시애]]군 토벌에 출정하였다. 7월 17일에는 각 군별 임무를 편성할 때 총통군(銃筒軍) 6백 명을 거느리고 이시애군과 교전하였다. [[8월 20일]] 회군하여 도총사 이하 장수들을 포상할 때 채단(綵段) 2표리(表裏)를 하사받았다. [[1467년]](세조 13) 특명으로 부원수(副元帥)에 책봉되었다.
 
=== 공신 책록과 최후 ===
[[1467년]](세조 13) [[9월 3일]] 남도 절도사(南道節度使), 그해 9월 20일 도총사 귀성군 이하 관원들을 포상할 때, 삼등 공신(三等功臣)으로 녹훈되고, 공신호(號)는 적개 공신(敵愾功臣)에 책록되었으며 전토(田土)와 노비를 하사받고, 중의대부 율원군(中義大夫 栗元君)으로 승작되었다. [[9월 20일]] 함길 남도 병마 절도사(咸吉南道兵馬節度使) 율원군(栗元君)에 임명되고 단서철권(丹書鐵券)이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