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워싱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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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
 
[[파일:MtVernon.jpg|thumb섬네일|left왼쪽|200px|마운트 버넌 농장]]
그리고 그는 21세였던 [[1753년]]에 버지니아 민병대에 입대하였고, 뒤에 영국군 정규군에 편성되어 [[프랑스 인디언 전쟁]]에 참전하여 싸웠다. 참전 후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마운트 버넌 농장으로 돌아간 그는 이때 그의 부인이 될 [[대니얼 파크 커스티스]]의 미망인인 [[마사 워싱턴|마사 댄드리지 커스티스]]를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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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왕 같은 대통령 ===
 
[[파일:Washington (3).jpg|thumb섬네일|right오른쪽|200px|워싱턴의 공식 포스터]]
 
미국이 탄생되고 그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지만, 대부분의 대국민들은 아직도 대통령이란 자리가 무엇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고, 그가 선출된 국왕이라고 생각했고, 대통령인 자신도 대국민들에 의해 선출된 국왕이라고 생각하여 국왕처럼 행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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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를 마친 그는 미련없이 자신의 사저가 있는 마운트버넌으로 돌아갔고, 2년 뒤인 [[1799년]] 향년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운 두 번까지만 대통령 임기를 마친다는 전통은 [[1940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깨고, 수정헌법 22조에 3선 출마금지, 타인의 임기로 2년 이상 대통령직에 봉직한 사람은 2번 이상 대통령에 당선될 수 없다는 조항을 추가할 때까지 철칙처럼 지켜온 절제의 미덕이었다.(임기는 4년으로, 최대 8년까지만 가능) 당연히 수정헌법 22조에 대통령 3선 출마금지법은 워싱턴의 전통을 계승, 강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초대 대통령이자, 떠날 때에는 떠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준 대통령이고, 귀족정치를 지지하고 비록 황제처럼 행동하여 정치를 결코 대중화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대중민주주의를 창조해내는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이다.
 
== 업적과 평가 ==
 
[[파일:George Washington Statue at Federal Hall.JPG|thumb섬네일|200px|워싱턴의 동상]]
 
그는 그의 타고난 능력인 명석한 판단력과 탁월한 지도력으로 남을 이끌어가는 데에 훌륭한 장점을 지녔다. 이러한 성격을 이용해 온갖 악조건과 싸우면서 끝내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어 미국의 독립을 성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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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거 통제}}
{{기본정렬:워싱턴, 조지}}
 
[[분류:조지 워싱턴| ]]
[[분류:1732년 태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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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대륙육군 장군]]
[[분류:미국 독립 전쟁 관련자]]
[[분류:버지니아 주버지니아주 출신 정치인]]
[[분류:잉글랜드계 미국인]]
[[분류:네덜란드계 미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