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원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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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원왕을 추격한 전연군은 모후 주씨(周氏)와 왕비를 포로로 잡았으나, 북쪽 길에서 고국원왕의 동생 무(武)의 군대를 만나 크게 패하여 퇴각하였다. 전연군은 퇴각하는 길에 고구려 백성 5만 명을 잡아갔을 뿐만 아니라, 고국원왕의 부왕(父王)인 [[미천왕]]의 미천왕릉을 파헤쳐, 미천왕의 시신까지 가져가는 만행을 저질렀다.
 
[[343년]]에 고국원왕은 동생 무(武)를 보내 전연에 신하의 예를 갖추고, 부왕(父王)인 미천왕의 시신을 돌려받았으며, 그 해 평양의 동황성(東黃城)으로 거처를 옮겼다.<ref name="encykorea">{{웹 인용 |url=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 |제목=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표제어 '고국원왕' |확인날짜=2013년 11월 17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004213514/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 |보존날짜=2013년 10월 04일4일 |깨진링크=예 }}</ref> [[345년]]에 전연이 [[모용각]](慕容恪)을 보내 남소(南蘇)가 함락되었으며, [[349년]]에는 전연의 망명자였던 송황(宋晃)을 전연으로 송환하였다.
 
[[355년]]에 고국원왕은 전연에 간청하여 모후 주씨(周氏)를 돌려받는 한편, 전연으로부터 정동대장군 영주자사 낙랑공 고구려왕(征東大將軍 營州刺史 樂浪公 高句麗王)에 책봉되었다. 이후 전연은 [[전진 (오호십육국)|전진]](前秦)의 공격을 받아 쇠퇴하였으며, [[370년]]에 멸망하였다. 이때 고국원왕은 고구려로 도망쳐온 태부 [[모용평]](慕容評)을 체포하여 전진에 송환함으로써 전진과 우호관계를 수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