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TedBot (토론 | 기여)
잔글 봇: 날짜 변수 정리
125번째 줄: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지학순]] 주교가 연루돼 구금됐을 때는 석방을 탄원하러 [[박정희]] 대통령을 직접 찾아가 면담하기도 했고, 그 앞에서 정권의 독재를 강도 높게 비판하였다. 또한, 정교분리와 자유와 인권 등의 문제를 놓고 박정희와 갑론을박하다가 논쟁 끝에 박정희를 설득시켜 지 주교의 석방을 얻어냈다.<ref>{{뉴스 인용|제목=<nowiki>[선종 김수환 추기경 추모]</nowiki> MB,천주교병원으로 맺은 인연 각별|url=http://www.kukinews.com/news2/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921195419&cp=nv|출판사=국민일보|저자=하윤해|날짜=2009-02-17|확인날짜=2009-02-21}}</ref><ref>{{뉴스 인용|제목=<nowiki>[사설]</nowiki> 세상에 큰 사랑 남긴 김수환 추기경|url=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90221027011|출판사=서울신문|날짜=2009-02-21|확인날짜=2009-02-21}}</ref> [[1974년]] [[7월]] [[인혁당 사건]] 관련자에 대한 탄원서에 서명하였다.<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25737.html <nowiki>[</nowiki>길을찾아서<nowiki>]</nowiki> 인혁당 가족 돕자 시작된 미행과 도청 / 문정현] 한겨레신문</ref>
 
또한, [[1971년]] [[대한민국]] 전역에 생방송으로 중계된 성탄 미사에서 그는 “비상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 유익한 일입니까. 이런 법을 만들면 오히려 국민과의 일치를 깨고, 그렇게 되면 국가안보에 위협을 주고 평화에 해를 줄 것입니다.”라며 비판하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김 추기경 어록‥시대 비춘 양심의 소리|url=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287621_2687.html|출판사=MBC|저자=양효경|날짜=2009-02-18|확인날짜=2009-02-21}}</ref><ref name="hankyoreh1">{{뉴스 인용|제목=12·12뒤 전두환 면전서 “서부활극 같다” 일침|url=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39368.html|출판사=한겨레|저자=권복기|날짜=2009-02-17|확인날짜=2009-02-21}}</ref> {{출처|날짜=2009-202-16|그의 유신비판 강연과 시국연설을 불쾌해한 [[박정희]]는 [[강원룡]]과 김수환의 강연, 연설, 방송은 꼭 시청하거나 보좌관을 시켜 녹화해두었다 한다.}}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박정희]]가 암살당하자 직접 추모사를 낭독하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nowiki>[김수환 추기경 추모 물결]</nowiki> 추기경님, 가시난닷 다시 오쇼서|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2/20/2009022000007.html|출판사=조선일보|저자=김지하|날짜=2009-02-20|확인날짜=2009-02-21}}</ref> 이때 추모사 중에서 “인간 [[박정희]]가 이제 주님 앞에 섰습니다.”라는 표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