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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미 (토론 |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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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1941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밀양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1959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여 4.19혁명과 5.16군부쿠데타를 겪으며 학생운동에 참여하였다. [[1963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숙명여자대학교]] 강사를 거쳐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 교관으로 재직하던중 [[1968년]] 가입한 적도 없는 [http://ch.yes24.com/Article/View/18833?Scode=050_001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20년 20일 동안 수감 생활을 하다가 [[1988년]]에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하였다. 감옥을 인간학, 사회학 교실로 여기며 사람에 대한 애정을 토대로한 '관계론'을 일구었다. 수감 중 지인들에게 보낸 서신이 평화신문에 연재되었고, 출소 후 출간된 《[http://www.shinyoungbok.pe.kr/letter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많은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1989년~2014년까지 [[성공회대학교]]에서 한국사상사, 중국고전강독, 정치경제학, 교육사회학등을교육사회학 등을 강의하였다.<ref name="한혜"/> <ref>한승동.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8&aid=0002303786 신영복 교수 누구? 삶 자체가 드라마…“서로 위로하는 ‘작은 숲’ 되라”]. 한겨레. 2016년 1월 16일.</ref> 어릴적 할아버지 슬하에서 붓글씨를 시작했고, 대전교도소 시절 교도소 당국에서 초빙했던 만당 성주표(晩堂 成周杓)선생, [[정향 조병호]](靜香 趙炳鎬)선생으로부터 붓글씨를 옥중사사 받았다. 한학자인 [[이구영 (1920년)|노촌 이구영]](老村 李九榮)선생과 같은 방에서 지내며 동양고전을 익혔다. 민중의 정서를 담은 글씨체를 모색하던중 어머님의 모필에서 영향을 받아 연대체, 민체, 어깨동무체라고 불리우는 [http://www.shinyoungbok.pe.kr/index.php?_filter=search&mid=writings&category=141&search_target=title&search_keyword=%EC%9C%A0%ED%99%8D%EC%A4%80&document_srl=303360 신영복체]가 탄생했다. 독창적이고 민중적인 서화 작품과 강연, 저서등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며 연대하였다.
 
[[2014년]] 희귀 [[피부암]] 진단을 받았고 2년간의 투병끝에 [[2016년]] [[1월 15일]]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 (서울)|목동]]의 자택에서 향년 76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ref name="차은"/> <ref>김성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303780 “모두에게 큰 스승이자 등대” 신영복 교수 별세 소식에 SNS 추모 물결]. 한겨레. 기사입력 2016년 1월 15일. 최종수정 2016년 1월 16일.</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