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흡 (조선 후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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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흡(田潝, ? ~ ?)은 [[조선]] 후기의 무신, 정치인으로 본관은 [[담양 전씨|담양]](潭陽)이다.
 
[[1630년]](인조 8년) [[8월 11일]] [[혜산]][[첨사]](惠山僉使)에 임명되고, 같은 날 [[조선 인조|인조]]로부터 궁시(弓矢)를 하사받았다. [[1635년]](인조 13년) [[9월 14일]] 절충장군 행[[사도진|사도]][[진관]]병마첨절제사 방답수군첨절제사(折衝將軍行蛇渡鎭管防踏水軍僉節制使), [[1637년]](인조 15년) [[12월 2일]] 부호군(副護軍), 이후 행사용(行司勇) 등을 지냈다.
 
[[1643년]](인조 21년) [[10월 9일]] [[궁궐]] 내에서 [[담배]]를 피워 궁중에 연기가 자욱하게 했다 하여 대사헌 홍무적(洪茂績), 집의 김수익(金壽翼), 장령 이상일(李尙逸), 지평 채성귀(蔡聖龜) 등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이들은 서반(西班)의 열좌(列坐) 가운데는 다투어 왜초(倭草 담배)를 피워 온 자리에 연기를 가득 내뿜는 이들이 있었다며, 주동자로 그와 유백선(劉伯善)을 지목하였다. 뒤에[[1646년]] [[7월]] 복직되고, [[사헌부]] 등이 이를 반대했으나 [[조선 인조|인조]]가 듣지 않았다. [[1646년]] [[7월 4일]] 부사직(副司直)이 되었다.
 
== 가족 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