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외 관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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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대 (1493-1776)===
<!--요약본 시작-->
현재 미국 영토에서의 식민지 ‘개발’은 처음부터 다민족 국가가 될 운명을 예정하듯이 진행되었다. 16세기, [[프랑스인]] [[자크 카르티에]]의 탐험으로 시작된 프랑스의 북미 식민지([[누벨프랑스]])의 영토는 전성기(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 이전)에 [[뉴펀들랜드]]에서 [[로키 산맥]]까지 그리고 [[허드슨 만]]에서 [[멕시코 만]]에 이르렀다.<ref>{{서적 인용 |저자=Andrew John Bayly Johnston |날짜=2001 |제목= Control and Order in French Colonial Louisbourg, 1713–1758 |url=http://www.jstor.org/stable/10.14321/j.ctt7zt68f |위치=미국 |출판사=Michigan State Universtiy Press |쪽=8-9 |isbn=978-0870135705 |확인날짜= }}</ref> 그 중, 현재의 미국 영토에 해당하는 곳은 [[누벨프랑스]]의 한 행정구역이었던 [[프랑스령 루이지애나]]로서, [[미시시피 강]] 유역의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으며 남북으로는 [[오대호]]에서 [[멕시코 만]]까지, 동서로는 [[애팔래치아 산맥]]에서 [[록키 산맥]]까지 영역이 뻗어 있었다. 영국은 [[버지니아]], [[캐롤라이나]] 및 [[뉴잉글랜드]]에 식민지를 개척하였다. 이처럼 ‘식민지 개발’은 주로 영국인과 프랑스인 두 민족에 의해 이루어졌고 여기에 더해 [[네덜란드]]가 [[뉴네덜란드]](현재의 [[코네티컷]], [[뉴욕]], [[뉴저지]], [[델라웨어]])를, 스웨덴이 [[뉴스웨덴]](1638년~1655년, [[델라웨어 강]] 사이에 [[델라웨어 만]]으로부터 현재의 [[뉴저지 주뉴저지주]] [[트렌턴 (뉴저지 주뉴저지주)|트렌턴]]까지)을, [[플로리다]]에는 스페인이 [[누에바에스파냐]](현재의 [[미국 남서부]]와 [[플로리다]]가 여기에 속한다.)를, 각각 나름대로 식민지로서 구축했다. <!--요약본 끝-->
 
1607년 영국은 [[버지니아 주|버지니아]]에 [[제임스타운 (버지니아 주버지니아주)‎|제임스타운]]이라고 명명된 북미 대륙 최초의 상주 식민지를 세우기 시작하였고, 이어서 [[버지니아]]와 [[캐롤라이나]]도 개척하였다. 1620년에는 [[필그림 파더스]] 일행이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종교의 자유를 찾아 [[뉴잉글랜드]]에 속하는 [[로드 아일랜드 주|로드 아일랜드]]에 도착하였다. 북미 동해안을 장악한 영국은 원주민 인디언을 몰아내고 영토를 서부로 확대하고 [[13개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신교도가 다수파를 차지하는 북미 식민지는 [[영국 성공회]]를 국교로 하는 영국과 알력이 있었다. 당시에는 종교적, 정신적으로 본국과 분리되었으며, 경제적으로도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18세기에 들어가면, 한랭한 기후로 비교적 농업에 적합하지 않은 동북부에서 [[양조]] · [[조선]] · [[운수]] 등의 산업이 발달하면서 영국의 경제를 압박하게 되었다. 그러자, 영국은 식민지가 영국 이외에 양털, 실, 모직물을 수출하는 것을 금지([[모직 조례]], 1699년)하고, 철을 녹이는 것을 금지([[철 조례]], 1750년)하여 공업의 발전을 방해하였다. 여기서 더 엄격한 [[중상주의]] 정책을 시행하여 식민지를 더욱 압박했다.
 
[[7년 전쟁]]의 일환으로 [[북아메리카]]의 식민지 지역에서 벌어진 [[프렌치 인디언 전쟁]](1755~63년)의 종결은 프랑스 · 영국과 미국간의 관계에 변화를 야기하였다. 이 전쟁에서 프랑스가 영국에 패함으로써 1763년에 미시시피 강을 경계로 동쪽을 영국에, 서쪽으로는, 플로리다를 영국에 빼앗긴 [[스페인]]에 양도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비밀 조약으로 서쪽 영토를 되찾았다. ) 한편, 1763년 [[대영 제국]]은 무려 1억 3000만 [[영국 파운드|파운드]]의 빚을 지고 있었는데, 한 해 이자만 450만 파운드에 달하는 액수로 제국 유지비용의 상당액을 《[[인지세법]]》(1765년), 《[[타운젠드법]]》(1767년) 등 각종 과세를 통해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충당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대영 제국]]의 결정은 아메리카 식민지의 대표들의 참여 없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13개 식민지]]는 “[[무대표 무과세|대표의 참여 없는 세금 부담은 무효]]”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격렬한 반대 운동의 전개로 영국은 이듬해 이 세금을 철폐했지만, 이번엔 〈[[차법]]〉으로 차의 무역을 독점하려 했다. 이에 격분한 개척민들은 1773년에 [[보스턴 항구]]를 습격하여, ‘[[보스턴 차 사건]]’을 일으켰다. 보스턴 차 사건에 충격을 받은 영국은 보스턴 항구를 폐쇄하고, 주민들에게 강경한 조치를 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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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은 나라의 국경을 넘어 북아메리카 특히 [[오리건]], [[캘리포니아]] 및 [[텍사스]]에서 확대해 나갈 권리에 대해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았다. 1840년대 중반까지 미국의 팽창주의는 ‘[[명백한 운명]]’이라는 사상으로 나타났다. 1836년 [[텍사스 혁명]]으로 [[텍사스 공화국]]이 성립되었지만, 멕시코는 이 땅을 자국의 영토로 여겼다. 그러나 1845년 [[텍사스 합병]]으로 텍사스가 미국의 주가 되자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1846년 5월 미국 의회는 [[멕시코]]에 선전 포고했다. 멕시코는 미군의 대포 공격에 견디지 못했고, 보급품의 고갈뿐 아니라 지휘 계통의 분열로 패배를 당했다. 1848년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으로 미국은 [[리오그란데 강]]을 경계로 하는 [[텍사스 주텍사스주]]와 [[캘리포니아 주캘리포니아주]]와 [[뉴멕시코 주뉴멕시코주]]를 받았다. 이후 13년간 멕시코에서 획득한 영토는 북부와 남부의 노예 제도의 확장을 둘러싼 당파적 긴장 관계를 좌우하는 것으로서 정쟁의 초점이 되었다.
 
==== {{국기|온두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