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토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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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코멘트 =
|국적 = {{국기나라|미국}}
|출신지 = [[피오리아 (일리노이 주일리노이주)|피오리아]]
|생년월일 = {{출생일과 나이|1970|8|27}}
|사망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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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하워드 "짐" 토미'''({{llang|en|James Howard "Jim" Thome}}, {{IPAc-en|ˈ|t|oʊ|m|i}};<ref>{{웹 인용|제목=Jim Thome Stats|url=http://espn.go.com/mlb/player/_/id/2604/jim-thome|웹사이트=[[ESPN.com]]|확인날짜=2012-10-25}}</ref> [[1970년]] [[8월 27일]] ~ )는 [[미국]]의 전 [[야구]] 선수로, 1991년부터 2012년까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MLB)에서만 22 시즌을 뛰었다. 선수 시절 6개의 팀에서 뛰었는데, 그중 1990년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2000년대 초반의 [[필라델피아 필리스]] 시절이 전성기였다. 생산적인 타자로서, 통산 612 [[홈런]]으로 메이저 리그 전체 6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이외에 2,328 [[안타]], 1,699 [[타점]], .276의 [[타율]]을 기록했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올스타전]]에 5회 출전했고 1996년에는 [[실버 슬러거 상]]을 수상했다.
 
야구와 [[농구]]를 하는 운동 선수 집안에서 태어나, [[일리노이 주일리노이주]] [[피오리아 (일리노이 주일리노이주)|피오리아]]에서 자랐다. [[일리노이 센트럴 컬리지]] 졸업 후 [[1989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1989년]] 드래프트에서 인디언스에 지명되었고, 1991년 메이저 리그 데뷔를 했다. 데뷔 초반에는 [[3루수]]를 보았지만 이후 내내 주로 [[1루수]]로 뛰었다. 인디언스 시절 팀의 중심 선수로서 1990년대 중반 3년간 팀이 2번이나 [[월드 시리즈]] 진출을 하는데 크게 일조를 했던 선수 중 한 명이었다. 그렇게 10여 년간을 클리블랜드에서 뛰다가 2002년 자유 계약으로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이적해서, 세 시즌을 뛰었다. 2006년 시즌 전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되었고, 그 해에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해의 재기상|올해의 재기상]] 수상은 물론, 그 팀에서 3년을 뛰면서 [[500 홈런 클럽]] 또한 달성했다. 이 시기부터 등 부위 통증으로 인해 주로 [[지명 타자]]로만 경기에 출전했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미네소타 트윈스]]를 거친 뒤 다시 클리블랜드와 필라델피아에도 돌아가 잠깐동안 뛰었다. 그 다음의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선수 경력의 마지막이었으며, 은퇴 후 화이트삭스에서 경영진으로 일했다.
 
선수 시절 전체를 돌아보았을 때, 짐 토미는 강한 타격을 하는 선수였다. 40홈런 이상이 6시즌이었고, 그중 2003년에는 47홈런을 쳐 내셔널 리그 1위를 차지했다. 통산 [[OPS]]가 .956으로 역대 19위이다. 2011년 메이저 리그에서 600홈런 이상을 친 역대 8번째 선수에 이름을 올렸다. 짐 토미의 독특한 스타일 중 하나는 그만의 타격 자세인데, 투수가 공을 던지기 전에 오른속으로 방망이를 잡고서 우측 필드를 가리키는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영화 [[내츄럴]]에서의 장면을 보고 따라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시종일관 긍정적인 태도와 사교적인 성격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선수 시절 활발한 [[박애주의|사회 기여]]를 인정받아 [[마빈 밀러 맨 오브 더 이어]]와 [[루 게릭 메모리얼 어워드]]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