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게임넷 스타리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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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6월 [[1998년 FIFA 월드컵]]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축구 붐이 일기 시작했으며, 이에 월드컵이 열리기 1년 전에 축구 시뮬레이션 게임인 《피파 월드컵 98》이 출시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투니버스]]의 PD 황형준은 ‘이걸 갖고 실제 중계방송을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실제 경기가 열리기 전인 1998년 5월 게임으로 결과를 예측해 보자는 의견을 냈고, 그래서 방송한 프로그램이 〈예측! 98 사이버 프랑스 월드컵〉이었다.<ref name='월간말'>월간말 2004년도 10월호(통권 220호) 2004. 10 [대중문화_열기 더해가는 스타크래프트 리그]"프로스포츠가 침체라고? 여기 스타리그가 있다!"</ref> 이 프로그램은 곧 큰 인기를 끌었으며, 시뮬레이션이 아닌 실제로 경기를 중계방송하는 게 어떨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마침 1998년 여름 [[스타크래프트]](오리지널)가 당시에 전국에 [[PC방]] 열풍을 불어일으킬 정도로 인기였고, 전국 각지에서 소규모 오프라인 대회도 속속 개최되었는데, 황형준은 이를 보고 텔레비전을 이용한 게임 중계를 제안했으며, 마침내 [[1999년]] [[3월]] 소규모 오프라인 대회중 하나인 ‘KPGL배 하이텔 게임넷’이 투니버스를 통해 세계 최초의 게임 중계 방송이 전파를 타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스튜디오가 없어 온미디어 사옥 휴게실에 있던 탁구대에 천을 덮어 탁자를 만들고 2대의 일반 모니터에 컴퓨터를 연결해서 경기를 중계했다. 당시에는 옵저빙 기술도 없었으므로 카메라처럼 경기내용을 담아낸 것이 전부였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2&aid=0000076637 스타리그 10만관중 “신화는 계속됩니다”] 경향신문, 2004-07-26</ref>
 
[[파일:KOREAN AIR STARLEAGUE2.jpg|thumb섬네일|right|400px|결승전 무대에 있는 엄전김]]
이 성공을 바탕으로 이후 중계진을 구하는 과정에서 만화 까꿍의 CD 게임화시절에 자주 만났던 까꿍의 스토리 작가 [[엄재경]]이 스타크래프트에 해박했으며 동시에 달변가라는 사실을 알고 해설로 영입했으며, [[1998년]] [[12월]] 래더랭킹 1위였던 [[김태형 (해설자)|김태형]](개명 전 김도형)이 [[1999년]] [[10월]]부터 해설을 맡기 시작하면서 스타리그가 탄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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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의 순항===
[[파일:Yongsan.png|thumb섬네일|250px|스타리그가 펼쳐지고 있는 용산 이스포츠 전용 경기장]]
2000 프리챌배 온게임넷 스타리그부터는 폐쇄형 스튜디오를 벗어나, 관람객이 있는 개방형 스튜디오에서 경기를 치르게 되고 결승전 또한 대회 최초로 스튜디오 외부에서 결승전을 진행하였다. 이후 2001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부터는 메이저 리그로 전환되었고, 처음으로 모든 경기가 생방송으로 시작되었으며 ‘[[테란]]의 황제’ 임요환은 신출 귀몰한 드랍쉽 작전으로 우승을 하면서 프로게임계의 최고 스타로 떠올랐다. 2001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역대 스타리그 최고 라이벌 전이라고 손꼽히는 ‘임진록(임요환 vs 홍진호)’이 펼쳐져 그 이전과는 다르게 많은 관심을 모았다. 이렇게, 스타리그는 연이은 흥행으로 2000년 여름에 투니버스 스타리그 시절 계약직 사원 네댓 명과 창고방에서 시작했던 게임 방송이 이제 80여 명의 인력이 일하는 게임 전문 방송국으로 발전해 나가는 단초가 된다.<ref>[http://media.daum.net/culture/art/view.html?cateid=1021&newsid=20060912181611861&p=m_daum 프로게임리그 대중화 시대 연 온게임넷] 미디어다음, 2006.09.12</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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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의 위기와 [[스타크래프트 II|스타 II]]로의 전환과 스타리그의 사실상 폐지===
[[파일:Bacstarleague3.png|thumb섬네일|left|250px|2003 Mycube배 온게임넷 스타리그부터 tving 스타리그 2012까지 사용된 스타리그 로고]]
2003 MYCUBE배 온게임넷 스타리그부터는 정식으로 스타리그 엠블럼을 도입하였고(이때, 마우스맨이 생겨났지만,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3]]부터 사라졌다.), 사상 최초로 스타리그 오프닝에 선수들을 직접 촬영하는 기법등을 도입하는 등 이존의 스타리그 대회들보다 상당히 많은 발전을 이루었으며, 규모 면에서도 매우 커졌지만, 타 게임 채널의 성장(MBC게임)과 스타크래프트 생방송 중계에 대한 신비감 저하로 인해 2002 Panasonic배 스타리그이후부터는 갈수록 관중의 수는 줄어드는 위기를 맞게 된다. 이에 2003년 3월 1일부터 ‘팀 체제’를 바탕으로 한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프로리그]]를 출범시켰고, 특히 질레트 스타리그 2004부터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에 이르기까지, 리그의 분위기를 북돋아주는 8강전을 도입하였는데 이로 인해 서울에만 집중되던 대회 경기들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효과를 가져와서 당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왔던 지역팬들의 호응이 이시기에는 폭발적으로 달아올랐다.<ref name='월간말'/>
그러나 2008년 봄부터 수많은 프로게이머들이 은퇴하기 시작하면서 스타리그 사상 최대의 위기를 겪게 되었고 2010년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과 블리자드와의 소송권 분쟁(다음해인 2011년부터 온게임넷의 모든 스타크래프트 대회에 블리자드로고를 포함시키면서 소송권 분쟁을 종료하게 된다.) 그리고 같은해 7월 27일 [[스타크래프트 II: 자유의 날개]]가 발매되었고 브루드워의 대회는 [[Tving 스타리그 2012]]를 마지막으로 마무리가 되었으며, 34번째 대회(99 프로게이머 오픈을 포함하면 35번째 대회)부터는 [[스타크래프트 II: 자유의 날개|스타크래프트 II]]로 스타리그의 역사를 계속 이어나가게 되었고 2013년도 WCS체제로 들어오게 되면서 [[스타크래프트 II: 군단의 심장]]으로 지속되었다. 그러나 2014년 부터는 [[온게임넷]]이 [[리그 오브 레전드]] 중심으로 중계했는데 스타리그의 폐지여부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폐지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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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리그 우승자 상징==
[[파일:Starleaguetrophy.png|thumb섬네일|right|250px|박카스 스타리그의 트로피]]
* '''우승자 배지''' : So1 스타리그 2005부터 역대 스타리그 우승자에게 마우스맨(스타리그 초창기 로고([[2003 Mycube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2]]))과 스타리그 로고가 새겨져있는 직사각형 배지 수여 (최초 수여자 : 오영종)
* '''우승자 트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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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리그 오프닝==
[[파일:Bacchusstarleague.png|300px|thumb섬네일|OAP팀<ref>Ongamenet On-air Promotion의 약자</ref> 이 제작한 박카스 스타리그 그래픽 패키지]]
2003 Mycube배 스타리그에서 최초로 도입된 스타리그 오프닝은 시즌마다 발전된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2006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 1 오프닝은 세계적인 방송디자인 마케팅 시상식인 프로맥스&BDA 월드 골드 어워즈 2007에서 은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EVER 스타리그 2007의 프로모션 스팟, 오프닝, 방송그래픽 등을 묶어 출품한 작품이 프로맥스&BDA 월드 골드 어워즈 2007 Art Direction & Design:Topical Campaign부문에서 동상을 수상했다.
===오프닝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