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폰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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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이탈리아]]
|출생일 = {{출생일|1882|3|3}}
|출생지 = [[이탈리아 왕국]] [[에밀리아로마냐 주에밀리아로마냐주]] [[라벤나 현라벤나현]]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49|1|18|1882|3|3}}
|사망지 =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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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권거래사 ===
사기 행각을 본격적으로 벌이기 위해 1920년 1월 일명 '증권거래사'를 세웠다. 처음 한 달 동안 18명이 1,800불을 맡겼고 한 달 후 신규 투자자들의 투자금에서 빼낸 돈이 기존 투자자 18명에게 지급됐다. 스쿨 스트리트 나일스 빌딩에 더 큰 사무실을 세웠다. 소문이 퍼져나가고 더 많은 투자자들이 왔다. 불과 1920년 2월에서 3월 한 달 사이 투자액은 5천 불에서 2만 5천 불로 상승했다(오늘날 현재 [[달러]] 가치로 환산하면 6만 2천 불에서 30만 9천 불). 폰지는 에이전트를 고용해서 [[뉴잉글랜드]] 지방 및 [[뉴저지 주뉴저지주]]에서 새로운 투자자를 물색하기에 이른다. 그 당시 투자자들은 고액의 [[돈]]을 지급받았고 소문은 더 퍼져갔다. 1920년 5월 투자액이 42만 불(오늘날 현재 [[달러]] 가치로 환산하면 최대 500만 불)에서 6월에는 250만 불에 이르렀으며(오늘날 현재 달러 가치로 환산하면 3,000만 불) 7월 말엔 하루에 백 만 불을 모으는 수준이 됐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수익을 보지 못했음에도 계속 돈을 투자했다. 폰지의 '증권거래사' 지점은 [[메인 주메인주]]에서 뉴저지 주에까지 뻗어나갔다.
 
초기의 투자자들은 주로 저소득층이었지만 소문이 퍼져 상류층도 투자를 시작했다. 심지어 [[로렌스 (캔자스 주캔자스주)|로렌스]]의 은행가가 1만 불을 맡길 정도였으며 존 콜린스같은 폰지의 가까운 친구들이나 처가집 식구들도 투자했다.
 
=== 사기 행각의 취약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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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화로운 일상생활 ===
폰지는 [[렉싱턴 (매사추세츠 주매사추세츠주)|렉싱턴]]에 별장을 구입한 뒤 최고급 차를 샀으며 [[뉴잉글랜드]] 지방에 걸쳐 여러 은행 계좌를 개설했다. [[결혼]] 후 가지 못한 신혼여행을 가고자 했으나 그 대신 [[여객선]] 1등석 표를 사서 이탈리아에 있는 모친을 모셔왔다. 폰지의 모친은 폰지 부부와 같이 살다가 곧 세상을 떠났다. 1920년 7월 31일, 폰지는 [[신부]] [[파스칼레 디 밀라]]가 운영하는 [[보육원]]에 모친을 기리는 의미로 10만 불을 기부했다. [[마카로니]] 회사를 사들였으며 [[와인]] 회사 일부를 사들여 투자자들에게 줄 배당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 사기 행각 의심 ===
단시일 내에 큰 수익을 낸다는 것에 의심을 품은 몇몇 사람들에게 고소당하고 재판에서 승소했지만 사람들은 계속 의심했으며 폰지는 [[매사추세츠 주매사추세츠주]] 당국으로부터 조사를 받았지만 조사관들을 회유함으로서 사기 행각이 발각되는 것이 잠시나마 미뤄지게 됐다.
 
=== 사기 행각 몰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