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혁명: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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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3월 13일]] 다른 혁명군 집단(학생 혁명 지도자단, RD; Directorio Revolucionario)이 대통령궁을 급습하여 바티스타를 살해하고 정권을 뒤엎으려고 했다. 공격은 자살행위였다. 혁명 지도자단의 우두머리였던 학생 호세 안토니오 에체베리아는 그가 바티스타의 죽음을 알리려던 [[아바나]] 라디오 방송국에서 바티스타군에 사살되었다. 한줌의 생존자들 중에는 움베르토 카스테요, 로날도 쿠벨라, 파우레 초몬도 있었다.
 
[[파일:Raulche2.jpg|right|thumb섬네일|220px|[[라울 카스트로]](왼쪽). 옆에는 [[체 게바라]]. 1958년 [[오리엔테]] 주의 [[시에라 데 크리스탈]] 산지 요새에서]]
 
정권은 극렬한 억압으로 끝까지 쿠바의 도시들을 통제하고자 했다. 그러나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맥에서 카스트로는 프랑크 파이스, 라모스 라투르, 우베르 마토스 등의 도움을 받아 바티스타의 작은 요새들을 공격하는 데 성공했다. 체 게바라와 라울 카스트로는 그들이 생포한 바티스타 일당이나 카스트로의 라이벌을 처형하는 등, 피델을 도와 산지의 정치적 지배를 공고하게 다졌다. 그리고 "[[에스코페테로스]](escopeteros)"라 하는 제대로 무장하지 못한 비정규군 오리엔테 주의 평원이나 산기슭에 있는 바티스타 군을 괴롭혔다. 이들은 카스트로의 주력군에 직접 가담하여 보급선을 지키고 정보를 주고 받았다. 결국 카스트로는 산지를 통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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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8년 중반부터 1959년 1월까지 ===
 
[[파일:Sierra Maestra -mapa rev cubana-.png|thumb섬네일|350px|right|1958년 쿠바 혁명 당시 시에라 마에스트라의 혁명군 거점을 나타낸 지도]]
 
1958년 8월 21일 카스트로의 군대는 반격을 시작했다. "오리엔테" 주(지금은 [[산티아고 데 쿠바]]와 그란마, 관타나모, 올긴으로 나뉘어 있다.)에는 피델 카스트로, 라울 카스트로, 후안 알메이다 보스케의 명령을 받는 네 개의 전선이 있었다. 산에서 내려와 지난 공격때 노획한 무기와 비행기로 밀수한 무기로 카스트로 군대는 일련의 승리를 거둔다. 카스트로가 기사(Guisa)에서 대승하고, 이어 몇몇 도시(마포, 콘트라마에스트레, 센트랄 오리엔테 등)을 점령하여 카우토 평야에서 승리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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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 체 게바라, 카밀로 시엔푸에고스, 하이메 베가가 이끄는 세 부대는 주도 [[산타클라라 (쿠바)|산타클라라]]가 있는 서쪽으로 진격했다. 거기서 그들은 카스트로 휘하가 아니었던 다른 저항군들과 합류한다. 파리아에 따르면, 체게바라 부대가 원주민 주인 라스 비야스를 지나갈 때 특별히 에스캄브라이 산맥을 지났다고 한다. (그곳에서 학생 혁명지도자단 군대(3월 13일단)는 몇 달째 바티스타 군대와 싸우고 있었다.) 두 반란군 사이에 알력이 커져갔다. 체의 7월 26일단에는 논객 아르만도 아코스타와 더 위험한 지휘자 펠릭스 토레스 등 공산주의자들이 매우 많았다. 그러나 연합한 반란군은 계속 공격을 이어가, 시엔푸에고스는 [[1958년]] [[12월 30일]] [[야과하이 전투]]에서 중요한 승리를 거둔다. (그래서 그는 "야과하이의 영웅"이란 별명을 얻었다.)
 
[[파일:Revolution Map of progress.jpg|left|380px|thumb섬네일| 쿠바 지도. 1956년 말 그란마 호의 반란군이 도착한 지점과 시에라 마에스트라의 반란군 기지를 보여주고 있다. 또 1958년 12월 체 게바라와 시엔푸에고스가 라스 비야스를 경유해 아바나로 간 진로도 나온다.]]
 
다음날(31일) 혼란속에서 체 게바라, 시엔푸에고스 군대와 로날드 쿠벨라, 후안 ("엘 메히카노El Mejicano") 아브라안테스, 윌리엄 알렉산더 모건이 이끄는 혁명 지도자단 반란군은 산타 클라라 시를 점령했다. 패배 소식으로 바티스타는 공포에 빠진다. 1959년 1월 1일 그는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도주했다. 카스트로는 그날 아침에 바티스타의 도주 소식을 듣고 즉시 산티아고 데 쿠바를 점령하기 위해 협상을 시작했다. 1월 1일 이 도시의 지휘관 루비도 대령은 병사들에게 싸우지 말 것을 명령하여 카스트로 군대가 도시를 점령했다. 이때 체 게바라와 시엔푸에고스 군대는 아바나로 진입했다. 그들은 산타 클라라에서 쿠바의 수도로 가는 동안 전혀 공격받지 않았다. 카스트로 자신은 승리 행진을 오래 하고 1월 8일에 아바나에 도착했다. 그는 마누엘 우루티아 예오를 대통령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