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빈 김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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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선조의 사랑을 독차지하였고, 그 때문에 다른 후궁들은 [[조선 선조|선조]]에게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그녀는 자신의 목숨이 위독해지자 누군가 자신을 저주하고 있다며 이를 선조가 조사하지 않아 자신이 죽게 되는 것이라는 말을 선조에게 아뢰었는데, 이 말을 듣고 난 후 선조는 다른 후궁들에게 더욱 모질게 대하였다.<ref name="sillok11">《조선왕조실록》 선수 11권, 10년(1577 정축 / 명 만력 5년) 5월 1일(무자) 3번째기사</ref> 그런 왕을 [[인빈 김씨|소용 김씨]](昭容 金氏)가 극진히 모셔 선조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소용 김씨는 왕에게 공빈의 허물을 자주 들춰내었고, 이 때문에 선조는 공빈을 애도하는 마음이 점점 작아지게 되었다. 훗날 인빈에 대한 선조의 총애는 이전에 공빈에 대한 것보다 훨씬 컸다고 기록되어 있다.<ref name="sillok11"/>
 
그녀는 1572년(선조 5년)에 선조의 서장자인 [[임해군]]을 낳았으며, 서차자 [[조선 광해군|광해군]]을 낳은 지 2년 만인 1577년(선조 10년) 6월 13일(음력 5월 27일)에 산후병으로 죽었다. 임해군은 선조의 첫 아들이었으나 성정이 난폭하고 방탕하여 세자에 오르지 못하고 둘째 아들인 광해군이 세자가 되었다. [[파일:성묘.JPG|thumb섬네일|공빈 김씨의 무덤인 성묘]]
 
=== 추숭과 격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