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환 (대한민국 임시정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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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07년]]에는 [[양기탁]], [[전덕기]], [[이동녕]], [[김구]] 등과 함께 [[신민회]]를 조직하는데 가담하였고, [[헤이그 특사 사건]]에 일조하였다.
 
[[파일:Kimyun1943.jpg|thumb섬네일|180px|right|1943년 5월 중경에서 열린 '재중 한인대회'에서. 조성환 (윤기섭과 차리석 사이에 안경쓴 사람)]]
 
[[한일 합방]] 이후에는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1912년]]에는 [[만주]]에 온 일제의 총리 [[가쓰라 다로]]를 암살하려다 실패해 옥살이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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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국 후 ===
 
[[파일:1945년 12월 3일 임정요인들.jpg|thumb섬네일|240픽셀|1945년 12월 3일. 임시정부요인 귀국기념 사진.<br>오른쪽 앞줄 끝이 조성환]]
 
해방이 된 이후에는 45년 11월 귀국,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12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위원장이 되고 [[신탁통치 반대 운동]]에 참여하였다. 그 뒤 46년 [[6월 29일]] [[이승만]], [[김구]] 등에 의해 민족통일총본부(民族統一總本部) 10인협의회 위원으로 선출되었고, 이어 민족통일총본부 협의원에 지명되었다.
 
===최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