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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사 조약 전후 ===
[[파일:시일야방성대곡.jpg|thumb섬네일|right|350픽셀|1905년 11월 20일. 황성신문 2면 사설란에 실린 '시일야방성대곡'. 애국계몽운동가 장지연이 [[을사조약]]을 성토하는 내용을 쓴 글이다.]]
[[1905년]] 4월 정6품 승훈랑의 품계를 받았고, 7월부터 9월까지 [[민영기]],[[윤치호]],[[이달용]]등과 함께 일본의 신문사를 시찰하고 돌아왔다. 같은해 [[을사늑약]]이 체결된 사흘 후인 [[11월 20일]] [[황성신문]]에 [[을사조약]]을 규탄하는 〈[[시일야방성대곡]]〉을 실었다가 투옥되었다. 을사조약을 규탄한 <시일야방성대곡> 은 [[1905년]] [[11월 27일]] 대한매일신보 에 한문과 영문으로 번역되어 기사로 나갔다. 이후 [[코리아데일리뉴스]], [[재팬크로니클]] 등의 언론이 이 명문을 인용했다. 한편, 장지연이 사장직에 있던 [[황성신문]]은 통감부의 압력에 압수되었고 [[1906년]] [[2월 12일]] 정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