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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령 북보르네오 회사 ===
[[파일:BritishNorthBorneoCharteredCompany.png|thumb섬네일|left|[[북보르네오 특허 회사]]의 취체역회(1899년)]]
[[파일:Brunei (left) Sulu (right) Overbeck.jpg|thumb섬네일|150px|right|'''(좌)''' 1877년 12월 29일 [[브루나이의 술탄]] [[압둘 모민]]이 첫 번째 양보 조약에 서명했다.<ref name="century"/><br />'''(우)''' [[술루 술탄]] 술탄 자말랄루라잠이 1878년 1월 22일 두 번째 양보 조약에 서명했다.<ref name="ssc"/>]]
1761년 [[스코틀랜드]]의 항해가이자 영국령 동인도 회사의 장교였던 [[알렉산더 달림플]]이 술루 술탄과의 조약을 마무리하였으며, 이에 따라 술루 지역에서 교역소를 세울 수 있도록 허락받았지만 실패했다.<ref>{{서적 인용|author=Howard T. Fry|title=Alexander Dalrymple (1737-1808) and the Expansion of British Trade|url=http://books.google.com/books?id=flfYsDjH_M4C&pg=PA72|accessdate=2013년 5월 20일|year=1970|publisher=Routledge|isbn=978-0-7146-2594-2|pages=68–}}</ref> [[1846년]] 브루나이 술탄이 사바 서해안 앞바다의 라부안 섬을 영국에 양도했으며, 라부안은 후에 1848년 영국의 직할 식민지가 되었다. [[1877년]] 사바도 영국에 양도되었으며, 1878년 술루 술탄이 사바의 동부 지역까지 양도했다.<ref>{{서적 인용|author=Charles ALfred Fisher|title=South-East Asia: A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Geography|url=http://books.google.com/books?id=dHsOAAAAQAAJ&pg=PA147|accessdate=26 May 2013|year=1966|publisher=Taylor & Francis|pages=147–|id=GGKEY:NTL3Y9S0ACC}}</ref><ref>{{서적 인용|author=Ooi Keat Gin|title=Southeast Asia: A Historical Encyclopedia, from Angkor Wat to Timor. R-Z. volume three|url=http://books.google.com/books?id=QKgraWbb7yoC&pg=PA251|accessdate=26 May 2013|year=2004|publisher=ABC-CLIO|isbn=978-1-57607-770-2|pages=251–}}</ref><ref>{{서적 인용|author=Keat Gin Ooi|title=Southeast Asia: A Historical Encyclopedia, from Angkor Wat to East Timor|url=http://books.google.com/books?id=QKgraWbb7yoC&pg=PA265|date=1 January 2004|publisher=ABC-CLIO|isbn=978-1-57607-770-2|pages=265–}}</ref> 일련의 이주 후 사바의 권리는 1881년 알프레드 덴트에게 양도되었으며, 그는 동년 영국령 북보르네오 임시협회 (Ltd)를 설립했다(예전에는 영국령 북보르네오 회사).<ref name="Malaysia and Its Neighbours, The World studies series">
{{서적 인용|title=Malaysia and Its Neighbours, The World studies series|author=J. M. Gullick|url=http://books.google.com/?id=ykM9AAAAIAAJ&pg=PA148&dq=%22In+1877+and+1878+the+Sultans+of+Brunei+and+of+Sulu%22#v=onepage&q=%22In%201877%20and%201878%20the%20Sultans%20of%20Brunei%20and%20of%20Sulu%22&f=false|accessdate=17 November 2012|year=1967|publisher=Taylor & Francis|isbn =9780710041418|pages=148–149|postscript=}}</ref> 이듬해 영국령 북보르네오 회사가 설립되었고 쿠닷이 수도가 되었다. 1883년 수도는 산다칸으로 이전되었으며 1885년 [[영국]], [[스페인]], [[독일]]이 마드리드의정서를 체결함에 따라 스페인의 술루 군도 지배를 인정하는 한편 스페인의 북보르네오 영유권 주장을 철회하도록 했다.<ref>{{저널 인용|title=Protocol of 1885|publisher=Sabah State Attorney-General's Chambers|accessdate=11 October 2009|url=http://www.lawnet.sabah.gov.my/Lawnet/SabahLaws/Treaties/Protocol%28Madrid%29.pdf}}</ref> 북보르네오는 1888년 영국의 피보호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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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세계대전과 일본의 지배 ===
{{참조|일본령 보르네오}}
[[파일:Sandakan Sabah POW-Camp AerialView AWM-044659.jpg|thumb섬네일|right|[[산다칸 포로 수용소]]의 조감도. 영국령 북보르네오 회사가 실험적인 농사를 하던 곳이었으나, 후에 [[일본 제국|일제]]가 이곳을 포로 수용소로 만들어 놓았다.<ref>{{웹 인용|url=http://www.dva.gov.au/commems_oawg/OAWG/war_memorials/overseas_memorials/malaysia/audio_guide/Pages/6Dailylife.aspx|title=Daily life (Info of the Sandakan Memorial Park)|work=[[Government of Australia]]|publisher=[[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 (Australia)|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date=15 April 2011|accessdate=22 September 2014|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0602020216/http://www.dva.gov.au/commems_oawg/OAWG/war_memorials/overseas_memorials/malaysia/audio_guide/Pages/6Dailylife.aspx|보존날짜=2011년 6월 2일|깨진링크=예}}</ref>]]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2년 1월 1일 [[일본]]이 라부안을 점령했고, 그 뒤 북보르네오의 타 지역들을 침공했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은 북보르네오와 그 일대의 섬의 대부분을 지배했다. 연합군의 포격으로 산다칸을 포함한 많은 지역들을 파괴했으며, 특히 산다칸은 땅 자체가 심하게 파괴되었다. [[1946년]] 영국의 직할식민지가 되었다. 한때 산다칸에서는 일본이 북보르네오에서 온 영국인과 호주인의 포로들을 자신들이 운영한 잔악한 포로 수용소에 수용한 적이 있었다. 수감자들은 악명 높은 비인간적 환경 속에서 고통을 겪었으며, 연합군의 포격이 일어나자 일본은 자신들의 포로 수용소를 라나우 내륙으로부터 260km 떨어진 곳으로 옮겼다. 2,504명의 수감자들이 줄어든 후, 모든 수감자들이 악명 높은 "산다칸의 죽음의 행진"을 강요당했다. 6명의 호주인 수감자를 제외한 전원이 숨졌다. 전쟁은 1945년 9월 10일 끝났다. 일본의 항복 이후 북보르네오는 영국 군령이 되었고, 1946년 영국의 직할 식민지가 되었다. 제셀턴(현 코타키나발루)이 산다칸을 대신할 새 수도가 되었으며, 영국의 지배는 1963년까지 계속되었다.
 
=== 독립과 말레이시아로의 합병 ===
{{참조|사바 (1963년)}}
[[파일:Sabah during the formation of Malaysia (16 September 1963).jpg|thumb섬네일|left|1963년 9월 16일 [[툰 푸아드 스테픈스]](좌)가 당시 [[말라야 연방]]의 부총리였던 [[압둘 라자크 후세인]](우)과 [[무스타파 하룬]](우측 두번째)과 함께 제셀턴의 파당 머르데카에서 말레이시아의 탄생을 선언했다.]]
[[1963년]] 8월 31일 북보르네오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ref name="Group">{{서적 인용|author=Oxford Business Group|title=The Report: Sabah 2011|url=http://books.google.com/books?id=nKJoQ4o-_DsC&pg=PA13|accessdate=26 May 2013|publisher=Oxford Business Group|isbn=978-1-907065-36-1|pages=13–}}</ref><ref name="SG">{{서적 인용|author=Frans Welman|title=Borneo Trilogy Volume 1: Sabah|url=http://books.google.com/books?id=glG-WBH8hkQC&pg=PA159|accessdate=28 May 2013|publisher=Booksmango|isbn=978-616-245-078-5|pages=159–}}</ref> 1962년 코볼드 위원회가 사바, 사라왁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독립을 결정했고, 이어 말레이시아로 편입되게 하였다(실제로는 빨리 독립하려는 취지였다). 초기 사바의 지도자들은 민족별/종교별로 다양했는데, 무스타파 하룬은 무슬림을 대변했는 가 하면 툰 푸아드 스테픈스는 비무슬림을 대변, 쿠샥츄는 중국인을 대변했다. 말레이시아 조약과 20조항 조약에 대한 논의가 끝난 후, 1963년 9월 16일 북보르네오는 '사바'가 되어 사라왁, 싱가포르, 말라야와 함께 신설 말레이시아를 출범시켰다.<ref>[http://www.un.org/News/Press/docs/2006/org1469.doc.htm United Nations Member States]</ref><ref name="multiple">[http://www.sabah.org.my/bi/know_sabah/history.asp "Sabah's Heritage: A Brief Introduction to Sabah's History"] {{웨이백|url=http://www.sabah.org.my/bi/know_sabah/history.asp |date=20070311043520 }}, ''[[Muzium Sabah]], Kota Kinabalu''. 1992</ref><ref>Ramlah binti Adam, Abdul Hakim bin Samuri, Muslimin bin Fadzil: "Sejarah Tingkatan 3, Buku teks", published by Dewan Bahasa dan Pustaka (2005)</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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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 ==
[[파일:MtKinabalu view from kundasan.jpg|thumb섬네일|right|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높은 키나발루 산]]
[[보르네오섬]] 북부지방을 차지하고 있다. 남서쪽으로는 사라왁, 남쪽으로 [[칼리만탄]](인도네시아령 보르네오)과 경계를 이루며 [[남중국해]], 술루 해, 셀레베스 해에 걸쳐서 둘쭉날쭉한 해안선이 1,290~1,450km쯤 뻗어 있다.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던 시기에는 북(北)보르네오라고 불렀다. 키나발루 산(4,101m)이 우뚝 솟아 있다. 크로커 산맥, 테루스마디 산맥, 위티 산맥이 크게 뒤엉켜 해발 1,200~1,500m의 봉우리들이 여기저기 솟아 있는 험준한 내륙지방을 형성한다. 크로커 산맥과 서해안 앞바다 사이에는 인구가 밀집한 해안평야가 널리 펼쳐져 있으며 테놈·탐부난·크닝아우 등의 평야가 내륙의 산괴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동부 저지대는 부분적으로 개석(開析)된 준평원이다.
[[파일:Kudat Sabah Tanjung Simpang Mengayau-23.jpg|thumb섬네일|left|보르네오 섬의 북쪽 끝]]
 
== 산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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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 ===
 
말레이시아에는 말레이인, 중국인, 인도인, 그리고 다른 많은 민족들이 몇 세대에 걸쳐 함께 살아왔다. 이들은 서로의 문화에 영향을 미치며 융화와 변화를 통해 진정한 말레이시아 문화를 형성했다. 
 
말레이시아 인구는 대부분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바 주와 사라왁 주에는 독특한 문화와 유산을 간직한 수많은 원주민들이 살고 있다. 
 
말레이인
현재 말레이시아 최대 규모의 민족은 말레이인이며 전체 인구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말레이시아에서 '말레이'라는 말은 이슬람교와 말레이 전통을 따르고, 말레이어로 말하며, 말레이인을 조상으로 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이들은 1400년대에 이르러 힌두교와 소승불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말라카 왕립 재판소의 판결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말레이인은 온화한 성품과 풍부한 예술성을 갖춘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인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은 전체 인구의 약 25%로, 두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 19세기에 이민 온 중국인들의 후손으로 모든 일에 근면하며 날카로운 비즈니스 감각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은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주로 페낭 섬 북부에 거주하는 호키엔 사용자, 수도 쿠알라 룸푸르에 사는 광동어 사용자, 남쪽의 조호 주에 사는 만다린(북경어) 사용자 등 세 그룹으로 분류된다. 
 
인도인
인도계 말레이시아인은 전체 인구의 약 10%로 세 주요 민족 중 가장 적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영국 식민지 시절 당시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더 나은 삶을 꾸리기 위해 말레이시아로 이주를 택한 남인도 이민자들이 있었는데, 지금의 인도계 말레이시아인들은 대부분 그들의 후손이다. 타밀어를 사용하고 주로 힌두교를 믿는 이들은 아름다운 사원과 매운 요리, 세련된 사리(saree:여성 힌두교도 의상)와 같은 다양한 문화도 함께 들여왔다. 
 
 
사바
사바 주에서 가장 큰 원주민 집단은 카다잔 두순(Kadazan Dusun), 바자우(Bajau), 무룻(Murut)이다. 
 
=== 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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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묘하게 어우러진 문화, 경이로운 자연을 경험하며 놀라움으로 가득한 완벽한 휴가를 보내고 싶다면 지금 말레이시아로 떠나 보자.
 
수백 년 전 국제 향신료 루트의 일부였던 말레이시아는 흥미로운 역사적 배경을 가진 모자이크 문화(다문화) 사회가 되었다. 사람부터 건축까지 이 지역의 모든 것들이 다채로운 문화유산과 융합된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말레이시아 문화를 이해하려면 먼저 말레이시아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 독립 운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