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유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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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국왕 자야바르만 2세 ==
[[파일:Karta AngkorWat.PNG|thumb섬네일|200px|앙코르 지역의 지도]]
[[파일:Museum für Indische Kunst Dahlem Berlin Mai 2006 036 2.jpg|thumb섬네일|200px|11~12세기의 비슈누 상]]
앙코르 시는 크메르 제국의 황제 자야바르만 2세에 의해 창건되기 시작했다. 신왕(神王)이라 자칭한 그는 권력과 부를 과시하고 사후에 신과 합체한다는 신앙심으로 300년에 걸쳐 수도 앙코르를 건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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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야바르만 7세, 앙코르 왕조의 가장 위대한 왕 ==
[[파일:Guimet IMG 6009 Jayavarman7.JPG|thumb섬네일|200px|파리동양박물관의 자야바르만 7세의 상]]
[[1150년]] 수르야바르만이 죽자, 왕국은 내전의 풍화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 기회를 틈타 지금의 베트남 남부에 있던 [[참파]]가 [[1177년]] [[메콩 강]]과 [[똔레삽 호수]]를 타고 수로로 침공을 하였다. 참파는 크메르의 수도인 야소다라푸라를 약탈하고, 왕을 죽이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나중에 [[자야바르만 7세]]가 되는 크메르의 왕자는 가신들을 거느리고 호수와 육지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참족을 물리친다. [[1181년]] 자야바르만은 왕좌에 등극하고, [[앙코르 왕조]]의 가장 위대한 왕이 되었다. 폐허가 된 야소다라푸라에 자야바르만은 성벽도시인 [[앙코르 톰]]과 [[바이욘]] 사원을 건설한다. 바이욘 사원의 석벽 부조는 참족과 왕의 전투 장면뿐만 아니라 부근의 촌락민들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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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달관은 인드라바르만 3세가 통치하는 이곳 크메르 수도에 1년을 머물면서 크메르 사회를 관찰한 40장 분량의 기록 [[진랍풍토기]](眞臘風土記)를 남긴다. 그는 종교나, 법제도, 왕위, 농경, 노예제도, 새, 식물, 목욕, 의식주, 도구, 동물, 상거래 등의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그의 기록은 현재 앙코르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으며, 또한 재미있는 여행기로 남아 있다.
[[파일:Faces Of Bayon.jpg|thumb섬네일|200px|바이욘]]
 
== 앙코르 왕조의 최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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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어 풀이 ==
[[파일:Baksei Chamkrong.jpg|thumb섬네일|200px|시바를 모신 박세이 참끄롱]]
* 앙코르(Angkor) - 도시(크메르어), 산스크리트어로는 나가라(nagara)
* 톰(Thom) - 큰(크메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