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도니오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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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우스는 마도니우스를 그의 장군으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이오니아]] 반란후 기원전 492년 그를 보내 [[아테네]]를 [[이오니아]]를 도운 것에 대해 처벌하였다. [[아테네]]로 가는 중에 그는 이오니아 도시에서 페르시아 독재자를 폐위하는데 군대를 사용하였고 민주 정부를 세웠다. 그것은 당시 그리스를 놀라게 한 조치였다. 사학자들은 이 조치가 페르시아 군이 통과한 후에 반란을 방지하려한 것으로 고려한다. 그의 함대와 군대는 그후 [[헬레스폰트]]를 통과하였다.
 
페르시아의 그리스 공격의 첫 희생은 [[타소스]]였다. 그곳은 그리스 섬으로 많은 광산이 있었다. 그곳은 아케메네스 제국의 소속이 되었다. 해군과 군대는 [[마케도니아 왕국]]으로 진군하였는데 그곳은 곧 페르시아 제국에 병합되었다.
 
그러나 이들 승리 후에 마르도니우스의 함대는 아토스 산 근처의 해안에서 폭풍에서 파괴되었다. 헤로도투스에 따르면 페르시아는 300척의 배와 2만인을 잃었다. 이후 마도니우스는 [[트라키아]]의 전투에서 군대를 지휘하였다. 마도니우스가 전투에서 부상당하였지만 그는 승리하였다.
그러나 함대의 손실은 [[소아시아]]로의 후퇴를 의미하였다 {{출처}}
 
그는 다리우스에 의해 면직되었는데 그는 다티스와 아타퍼네스를 기원전 490년에 그리스 침공군을 이끌도록 임명하였다. 그들은 [[낙소스]]를 함락시키고 [[에레트리아]]를 파괴하였지만 [[마라톤 전투]]에서 격파되었다.
 
마도니우스는 다리우스의 후계자이며 그의 조카이자 사촌인 [[크세르크세스 1세]]의 호의로 복직하였다. 크세르크세스는 처음에는 그리스와 다시 전쟁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지만 마도니우스가 반복적으로 그에게 다리우스의 패배를 보복하여야 한다고 확신시켰다. {{출처}}
이 관점은 크세르크세스의 조언자 [[아르타바누스]]에의해 반대되었고 그는 문제에 더욱 주의할 것을 강요하였다.{{출처}}
헤로도투스는 마도니우스를 악당 조언자로 그렸는데 그가 단지 그리스의 [[사트랍]](태수)이 되기를 원하였다고 한다.
 
그는 테르모필라에 전투에 참여히였고 살라미스 해전에서의 페르시아의 패배후에 크세르크세스를 다른 전투에 지속하기를 권하였다.
이번에는 마르도니우스는 크세르크세스를 설득할 수 없었다. 그러나 크세르크세스가 떠날 때 그는 페르시아에 의해 정복된 그리스 일부지방의 총독이 되었다.
그는 당시 [[알렉산더 1세]]가 다스리던 [[마케도니아]]를 병합하였지만 알렉산더 자신은 마도니우스의 계획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아테네에 넘겼다. 그리스인으로서 그는 그리스가 노예화되는 것을 참을 수없다고 하였다.{{출처}}
그후 마도니우스는 아테네를 약탈하였고 아테네는 [[살라미스 해전]] 이전에 버려졌다.
그는 아테네에 돌아올 것을 제안하였고 아테네를 재건하는 것을 돕기로 하였지만 아테네인들은 다른 전투를 준비하였다.{{출처}}
 
마도니우스는 다른 페르시아 장군의 만류에도 프라타에아에서 그들과 부딪힐 것을 준비하였으나, 그 전투에서 마도니우스는 압도적이 수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피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