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상 (1924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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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경성]] 출신이다. [[경복중학교]] 재학중 [[한용운]], [[안재홍]](安在鴻), [[여운형]](呂運亨) 등의 영향을 받아 [[1939년]] [[경복중]] 4학년 때부터 독립운동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1941년]] 주낙원(朱樂元)의 집에서 [[흑백당]](黑白黨)을 조직에 참여하고 선언문을 작성하고, 강령과 규약 등을 만들었다. 이후 [[조선총독부]] 인사 [[암살]] 저격을 목표로 하여, 홍건표(洪建杓) 등과 함께 독립운동 참여를 촉구하는 유인물을 인쇄하려 비밀리에 거리에 뿌렸다. 또한 거사에 필요한 무기를 경복중학교의 교내 창고에서 약탈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거사 직전 [[1942년]] 초에 참여자인 김창흠(金昌欽)이 [[일본]][[헌벙]]에 잡혀서 [[흑백당]]조직이 탄로나, 수배되었다. 흑백당 단원들이 수배자가 되면서 [[한국 광복군]]에 가담하기로 결정하고 해산, 산발적으로 2,3명씩 조를 나누어 각각 다른 길을 거쳐서 국외로 출국 [[만주]]의 [[신경]]으로 떠났다. 그러나 총독부 형사의 추적으로 [[1944년]] [[1월]] [[신경]]에서 검거되고, [[베이징]], [[봉천]], [[신경]] 등지에서 잡힌 다른 동지들과 함께 송환, 징역 8년형을 선고받고 투옥되었다. 수감 도중 8.15 해방으로 풀려났다. [[1977년]] [[11월 30일]] 기타 훈격으로 건국포장이 추서되었으며 당시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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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대한민국 임시정부]]
[[분류:한국 광복군]]
[[분류:경복고등학교 동문]]
[[분류:한국의 독립운동]]
[[분류:서울특별시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