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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문은 [[조선 중종|중종]]의 서녀 [[혜정옹주]]의 부마인 [[송인]]이 썼다.
 
훗날 그의 아들 윤소의 서녀가 친정에서 출산 중 사망하여 친정 선산 근처에 매장되었다가 후에 [[2002년]] [[4월]]에 미이라로 발견되어 화제가 되었다. 발견 당시 450년과 440년이 경과된 미라로 추정되었다. ([[EBS]] '과학, 미라에 말 걸다' [[2009년]] [[7월 31일]](목) 방송 참조) [[파평윤씨 모자 미라]]로 명명된 이 미라는 윤원량 혹은 해당 여성의 오빠가 넣어준 편지서신, [[숙빈 윤씨]]가 친정 일가와 주고받은 언문 편지 등이 발견되면서 그녀가 윤원량의 손녀인 것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해당 여성의 남편이 누구인지는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다. [[파평 윤씨]] 가문 여성의 미라가 [[묘지]] 이장작업도중 발견되었다. 윤씨 부인의 미라는 [[공기 (기체)|공기]]가 통하지 않는 묘지구조때문에 생긴 자연적인 미라이다.
 
== 가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