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조 도키마사: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Choboty (토론 | 기여)
잔글 봇: 이즈 국 사람을(를) 이즈국 사람(으)로 분류 대체함
47번째 줄:
 
=== 실각에서 최후까지 ===
겐큐 2년([[1205년]]) 윤7월, 도키마사는 후처 마키노 카타와 공모해 쇼군외솑군인 사네토모를 살해하고 사위 히라가 도모마사를 새로운 쇼군으로 옹립하려는 계획을 세웠다<ref name="『北条義時』吉川弘文館。118頁。">『北条義時』吉川弘文館。118頁。</ref>. 하지만 사네토모의 어머니이자 도키마사의 딸인 마사코나 그 동생(즉 도키마사의 아들) 요시토키(義時)에게 음모가 발각되어 윤7월 19일에 마사코 남매가 보낸 유우키 도모미쓰(結城朝光)나 미우라 요시무라(三浦義村)·나가누마 무네마사(長沼宗政) 등에 의해 도키마사의 저택에 있던 사네토모가 요시토키의 저택으로 옮겨지고, 도키마사를 지지하던 고케닌 대부분도 요시토키에게 가서 붙어버리면서 음모는 완전히 실패하고 만다<ref name="『北条義時』吉川弘文館。118頁。"/>. 다만 도키마사 본인은 스스로의 외손이기도 한 사네토모 살해에는 소극적이었고 적극적이었던 것은 마키노 카타 쪽이었다고 한다<ref name="『北条義時』吉川弘文館。118頁。"/>. 결국 막부 안에서 완벽하게 고립되고 만 도키마사는 19일에 출가했고、다음날 마사코나 요시토키 등에 의해 강제로 이즈의 호조 장원에 유배되다시피 했다<ref>『北条義時』吉川弘文館。118頁・119頁。</ref>.
 
마키씨(牧氏) 사건이라 불리는 이 사건에 대해서 [[난보쿠초 시대|남북조 시대]]의 역사책인 《보력간기(保暦間記)》는 도키마사와 마키씨 집안에 의한 사네토모 살해는 거의 성공 직전에 있었다고 했고, 가마쿠라 초기의 《육대승사기(六代勝事記)》는 도키마사가 음모의 최종 결행을 기획했다고 했으며 《호조구대기(北条九代記)》는 모두 도키마사의 계획이었다고 했다<ref>『北条義時』吉川弘文館。120頁。</ref>. 또한 《아즈마카가미》는 도키마사가 나이를 먹어 판단력이 흐려진 나머지 마키씨의 주도에 놀아나서 음모를 꾀하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ref>『北条義時』吉川弘文館。121頁。</ref>. 한편으로 하타케야마 시게타다 살해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아들 요시토키와의 대립이 깊어졌고<ref>요시토키는 시게타다와는 의형제였다. 시게타다가 죽고 그의 무죄가 밝혀지자 요시토키는 아버지에 대한 보복으로 아버지를 지지하던 이나게 시게나리(稲毛重成)와 한가야 시게토모(榛谷重朝) 등을 잡아 죽이기도 했다. 『北条義時』吉川弘文館。117頁。</ref>、또한 도키마사가 시게타다를 살해한 것에 대해 시게타카에 대한 동정이 모이면서 도키마사는 덕망을 잃게 되고 도키마사에 대한 요시토키의 경계심이 강해졌으며<ref>『北条義時』吉川弘文館。117頁。</ref> 이는 도키마사와 마사코·요시토키 남매의 정치적 대립의 배경이 되었다고 여겨진다<ref>『北条義時』吉川弘文館。122頁。</ref>. 이후 도키마사는 정치무대에 서지 못하고 정치생명도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