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즈 브라이언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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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브라이언트'''({{lang|en|Louise Bryant}}: 1885년 12월 5일-1936년 1월 6일)는 [[미국]]의 [[여성주의|여성주의자]], 정치운동가, 언론인이다. [[러시아 혁명]]과 [[볼셰비키]]에 대한 옹호 활동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동료 언론인 [[존 리드 (1887년)|존 리드]]와 1916년 결혼한 브라이언트는 [[캐서린 브레시콥스키]], [[마리아 스피리도노바]], [[알렉산드르 케렌스키]], [[블라디미르 레닌]], [[레프 트로츠키]] 등 러시아 지도자들에 대한 평론을 썼다. 브라이언트가 러시아를 답사하는 동안 그의 글들은 [[허스트 커뮤니케이션|허스트사]]의 신문들을 통해 [[1차대전]] 직후 시기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 퍼졌다. 이렇게 첫 러시아 여행에서 쓴 글을 모아 1918년 『러시아에서의 붉은 6개월』을 출간했다. 이듬해 브라이언트는 [[미국 상원]]에서 볼셰비키의 대미 영향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설치한 소위원회인 [[오버맨 위원회]]에서 러시아 혁명을 변호했다. 1919년 말, 브라이언트는 공개적으로 볼셰비키를 지지하고 미국의 러시아 내전 개입 시도를 비판하는 전국 순회 강연을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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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리드가 [[티푸스]]에 걸려 사망했다. 브라이언트는 러시아, 터키, 헝가리, 그리스, 이탈리아 등 유럽과 중동 각지를 다니면서 허스트사에 기고를 계속했다. 이 시기에 쓴 글들을 모아 1923년 『모스크바의 거울들』을 출간했다. 그해 말 외교관 [[윌리엄 크리스티안 불릿 주니어]]와 재혼했고, 그와의 사이에 유일한 자식인 딸 [[앤 모엔 불릿|앤]]을 낳았다. 말년의 브라이언트는 [[동통성 지방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사회 활동이 불가능해졌다. 저술이나 출판은 거의 하지 않았으며, 술을 많이 마셨다. 불릿은 1930년 브라이언트의 음주벽과 동성애를 이유로 이혼하고 딸의 양육권도 가져갔다. 블라이언트는 1936년 [[파리 (도시)|파리]] [[세브르]]에서 객사했고 [[베르사유|베르사유시]]에 묻혔다. 향년 5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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