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괄의 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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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
이괄은 [[1622년]](광해군 14년) 함경도 병마절도사에 임명되어 임지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친분이 있던 신경유의 권유로 [[광해군]]을 축출하고 새 왕을 추대하는 계획에 가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623년]] [[4월 11일]]([[음력 3월 12일]])에 [[서인]]의 주도로 일어난 [[인조반정]]에서 광해군을 몰아내고 [[조선 인조|인조]]를 즉위시키는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이괄은 2등 공신에 책록되었고 반정 뒤 평안도 병마절도사로 임명되어 불만이 컸다. 그러던 중 [[1624년]] 음력 1월 [[문회]], [[허통]], 이우 등이 이괄과 이괄의 아들 [[이전 (17세기)|이전]], [[한명련]], [[정충신]], [[기자헌]], [[현집]], [[이시언 (조선)|이시언]] 등이 역모를 꾸몄다고 무고하였다. 하지만 역모의 단서는 찾지 못했고 대신 이괄의 아들 [[이전 (17세기)|이전]]을 서울로 압송하기로 했다.
 
[[기자헌]], [[현집]], [[이시언 (조선)|이시언]] 등이 역모를 꾸몄다고 무고하였다. 하지만 역모의 단서는 찾지 못했고 대신 이괄의 아들 [[이전 (17세기)|이전]]을 서울로 압송하기로 했다.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