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건적의 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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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가 꺾인 홍건적은 이 두 갈래 길로 개경에서 도망쳐 그대로 압록강을 건너 요동으로 후퇴했다. 고려군은 그들의 퇴로를 열어준 채 계속 추격하여 홍건적을 끊임없이 괴롭혔으며, 여름에 수장인 파두반을 사로잡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공민왕]]과 고려 조정이 개경을 떠난 이후 11월 24일에 개경에 입성했다.
 
[[이성계]]는 휘하의 고려인 및 여진족으로 구성된 강력한 친병 조직 2,000명을 거느리고 수도 탈환 작전에 참가하였다. 그는 선봉에 서서 말을 탄 채 장수만 골라 쏘는 맹공을 펼쳐 마침내 홍건적의 괴수 사유(沙劉)와 관선생(關先生)까지 참살하고 수도에 제일 먼저 탈환해 입성하는 큰 전공을 세워 두각을 나타냈다.
 
주원장이 저우장의 심만삼의 재력에 도움을 받아, 서수휘, [[진우량]], [[장사성]] 등의 세력을 격파했다한다. [[주원장]]은 남경을 근거지로 하여 기타 반란자들을 차례로 쓰러뜨리고 장강유역의 화남을 통일하는데 성공하여 1368년 난징에서 황제로 즉위하여 [[명나라]]를 건국하였다. 홍무제는 건국하자마자 북벌을 개시하여 [[원 순제]](토곤 티무르)는 대도(북경)를 버리고 북쪽으로 도망쳐 만리장성이남의 중국은 명나라에 의해 통일되었다. 결국 중원을 점령하고 있던 원을 북쪽으로 몰아내고 명(明)을 건국하여, 한족(漢族) 왕조를 복원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