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레베데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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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oviet military advisers attending North Korean mass event.jpg|섬네일|left|300px|1945년 10월 14일 '평양시 민중대회'에서 처음으로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김일성. 뒤의 소련군 장성들 중 맨 오른쪽이 레베데프 소장이다. [[그리고리 메클레르]] 중좌가 개회를 선언하고, 이어 레베데프 소장이 등단하여 소련군이 온 의의와 진의를 설명하고 조선인민에게 축하와 격려의 말을 하였다.<ref>[http://www.nl.go.kr/nl/search/bookdetail/online.jsp?contents_id=CNTS-00056891437# 金日成 將軍 凱旋記 / 韓載德 著(김일성 장군 개선기 / 한재덕 저)] (平壤(평양), 民主朝鮮出版社(민주조선출판사), 1947.11.20) p.101</ref>]]
N. G. 레베데프는 1901년 러시아 [[칼루가 주]](Калужская область) 지즈드린스키 군(Жиздринский район)의 부다(Буда) 마을에서 태어났다.
1916년까지 부드스크 젬스트보 학교(Будская земская школа)에서 공부했다. 1920년부터 적군(RedКрасная Armyармия)에 복무했다. 1941년 6월 15일에 제25군 군사위원회 위원에 임명되었고, 1942년 12월 6일에 소장으로 진급했다.<ref name="wik"/>
 
1945년 8월 제1극동전선군 산하 제25군의 대일본전 지도자의 한명으로 북한에 진주하였다. 평양 소련군정의 명목상 최고 책임자는 25군 사령관 [[이반 치스차코프]] 대장이었으나 그는 정치 문제에는 개입하지 않았고, 소련군정을 실제로 총지휘한 사람은 보로실로프(지금의 [[우수리스크]])의 연해주 군관구 군사위원 [[테렌티 스티코프]]였다. 레베데프 소장은 25군의 군사위원으로 평양 현지에서 스티코프 등 상부의 지시를 받아 이행하는 실질적 책임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