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 대학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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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일본군의 난징 대학살이 극에 달했을 무렵, 일본군 [[무카이 도시아키]] 소위와 [[노다 쓰요시]] 소위가 [[100인 목베기 시합]]을 했다는 내용의 일본 [[마이니치 신문]]에 개제되었던 게 있었는데, 최근 [[2005년]]에 그 유가족들이 [[100인 목베기 시합]]에 대해 보도했던 언론사들을 명예훼손을 이유로 고발하여 소송을 걸었다. 일본 극우 및 우익 단체들은 이 유가족들을 지원하는 모임도 결성하는 등 소송을 지원했다. 소송을 건 원고측은 "전쟁 수행 중에 일본군인들의 사기를 높이고, 국민들에게 선전하기 위해 언론에서 지어낸 얘기일 뿐 실제 목베기 게임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 이 사건에 대해 [[도쿄 지방 재판소]]는 100인 목베기 시합이 없었던 일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며 유가족 등 원고측에 패소판결을 내렸다.<ref name=autogenerated1 />
[[2000년]] [[1월 23일]] [[오사카]]에서는 "20세기 최대의 거짓말! 난징 대학살을 철저히 검증하는 집회" 대회를 열어 부정파론자들이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난징 대학살 부정파론을 주장하는 부정파론의 대표적인 인물로 만화가 [[고바야시 요시노리]], [[아세아 대학교]] 교수 [[히가시나카노 슈도]] 등이 최선봉이 되어 다시금 부정론을 강하게 제기했다. 반면에 난징 대학살을 비롯해 일본 제국의 여러 전쟁 범죄에 대한 진실을 일본의 민간 단체 및 시민 단체에서 일본 제국의 전쟁 범죄를 규탄하고 진상규명을 밝히고자 하지만, 최근에는 일본의 부정파론이 대두되면서 난징 대학살에 대해 금기시되는 분위기로 흘러가고있다.
일본의 난징 대학살에 대한 반응은 크게 3부류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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