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TedBot (토론 | 기여)
잔글 봇: 틀 이름 및 스타일 정리
Abc6321 (토론 | 기여)
잔글편집 요약 없음
52번째 줄: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으로 인한 [[청나라]]에 대한 반감에 더하여, 예전부터 [[발해]]와 [[고려]], 조선을 형님의 나라이며 상국으로 받들던 [[여진족]]에 대한 멸시 등이 복합되어 반청 감정은 고조되었고, 북벌론이 등장하게 되었다. 청나라에 대한 반감은 19세기까지 이어졌고 청나라가 유럽 열강과의 전쟁에서 패하기 시작하면서 [[조선]]이 자주독립국임을 선언해야 된다는 여론이 강하게 나타났다.
 
[[1890년]]대에 [[서재필]]은 [[영은문]]과 모화관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과 [[독립관]]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서재필은 직접 [[프랑스]]의 [[개선문]] 사진을 보고, 이를 참고하여 독립문의 모양새를 직접 스케치했다. 이는 1896년 [[스위스]]계<ref>서재필의 일기에 따르면 그를 스위스인이라 했는데 그는 사실 우크라이나 출신의 러시아인으로 부계 혈통 중에 일부 스위스인의 피가 흐르고 있긴 하다.</ref> 건축가 [[아파나시 세레딘사바틴]]에게 보내졌다.
 
=== 서재필의 논평 ===